[내일을 열며] 노벨상 논란과 거부할 신념

입력 2025-10-16 00:37

2025년 노벨상 시즌이 막을 내렸다. 매년 10월 생리의학상을 시작으로 물리학상, 화학상, 문학상, 평화상 그리고 경제학상이 발표되는 노벨상은 수상자에 대해 전 세계적인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진다. 하지만 올해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노벨평화상 수상 여부가 가장 화제였다. 국제 질서를 좌지우지하는 미국의 대통령이 노골적으로 상을 바랐기 때문에 수상 실패 이후 전 세계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이다.

결과적으로 올해 노벨평화상은 베네수엘라의 니콜라스 마두로 독재 정권에 대항해온 야권 지도자 마리아 코리나 마차도에게 돌아갔다. 그리고 마차도는 트럼프 대통령에게 감사를 표하며 노벨평화상을 바친다고 밝혔다. 마차도가 마두로 정권 전복을 위해 외국의 군사 개입까지 촉구했던 만큼 이번 발언은 ‘아첨’을 넘어 미국 정부와 협력하기 위한 외교 전략으로 보인다. 앞서 10여개국 정치인들이 트럼프 대통령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것도 자국의 이익을 위해서다. 이번에 수상이 불발됐지만 노벨평화상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집착은 계속될 전망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이미 세계 곳곳의 평화 협상을 중재했다며 내년 수상을 기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내년 노벨상 시즌이 되면 국제사회가 다시 한번 시끄러워질 듯하다.

사실 노벨평화상은 1901년 제정 이후 자주 논란에 휩싸였다. 특히 역대 수상자 가운데 정치인들은 수상자답지 못한 행보를 보여주는가 하면 수상의 이유였던 정치적 성과가 뒤집혀 더 나쁜 상황이 초래된 경우가 적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런 논란은 근본적으로 ‘평화’가 각 국가의 이해관계 및 정치적 문제와 연관돼 있어서다. 노벨문학상 역시 노벨평화상만큼은 아니더라도 역사적으로 문학성보다 지역, 언어, 국가, 인종 등을 고려해 선정한다는 점에서 자주 논란이 됐었다. 노벨경제학상 역시 수상자들의 미국 편중과 주류 경제학 위주의 시상 때문에 비판받고 있다. 또한 생리의학, 물리학, 화학 분야의 노벨상 역시 소규모 그룹이 작업하던 과거와 달리 요즘은 수백명의 연구자로 구성된 다양한 연구 그룹 간 국제 협력이 이뤄지는 데도 단일 연구에 대해 2개 이상의 다른 연구자와 3개 이상의 다른 개인에게 공유될 수 없다는 과거 원칙 때문에 핵심 연구자가 누락되는 경우가 많아 문제로 지적된다.

각종 논란에도 불구하고 노벨상이 세계에서 가장 권위 있는 상인 만큼 선정된 사람이 수상을 거부하기란 쉽지 않다. 하지만 노벨상 역사에서 상을 거부한 사람이 6명이나 된다. 다만 나치 독일의 리하르트 쿤(1938년 화학), 아돌프 부테난트(1939년 화학) 그리고 게르하르트 도마크(1939년 생리의학)와 구소련의 보리스 파스테르나크(1958년 문학) 등 4명은 선정 당시 자국 정부의 압박에 거부했지만 정권이 바뀐 뒤 상을 받아갔다.

그래서 자발적으로 거부한 사람은 1964년 문학상을 거부한 프랑스 작가 장폴 사르트르와 1973년 남북 베트남 정전을 이끌어낸 파리평화협정의 공로로 다음 해 헨리 키신저 당시 미국 국무장관과 함께 평화상 수상자로 공동 선정된 베트남 외교관 레득토뿐이다. 실존주의를 대표하는 사르트르는 노벨상 수상이 작가의 자유로운 신념과 행위를 제약한다는 신념 때문이고, 레득토는 베트남에 평화가 오지 않았다는 이유였다. 참고로 북베트남이 평화협정을 깨고 미군 지원을 받는 남베트남을 무력 병합하자 키신저는 평화상 반납을 요청했지만 수용되지 않았다. 최근 노벨평화상을 정치적으로 이용하려는 움직임 등 노벨상을 둘러싼 논란이 많은 요즘 사르트르와 레득토의 노벨상 거부는 인간에게 있어 신념의 무게감과 염치의 미덕을 느끼게 한다.

장지영 문화체육부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