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농산물 가격 주무르는 도매법인… 5년간 영업익 33% 급증

입력 2025-10-16 00:03

전국 농산물 가격을 좌우하는 공영도매시장에서 농민들이 농산물을 납품할 때마다 붙는 유통비용(위탁수수료·하역비)이 최근 5년간 꾸준히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반면 이런 판매 대행 수수료를 챙기는 도매법인의 영업이익은 같은 기간 33% 급증했다. 농민 손에 쥐어지는 몫은 줄고 소비자 물가는 오르는데 도매상만 배 불리는 유통구조가 굳어지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농림축산식품부와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가 15일 국회 농림축산식품해양수산위원회 소속 어기구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전국 공영도매시장 위탁수수료는 5348억6800만원으로 집계됐다. 위탁수수료는 도매법인이 농수산물 판매를 위탁받아 농민 등 출하자에게서 받는 돈으로, 최근 5년간 약 25% 증가했다.

도매시장에 농산물을 내릴 때 드는 하역비 역시 같은 기간 10% 늘어 지난해 773억원을 기록했다. 위탁수수료와 하역비는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내다 팔려면 기본적으로 부담해야 하는 대표적인 유통비용이다. 2000년 ‘농수산물 유통 및 가격안정에 관한 법률’ 개정으로 하역비 일부를 도매법인이 부담하게 됐지만 농민 부담 규모는 시장이나 법인별로 여전히 제각각이다.

반면 도매법인의 영업이익은 2020년 618억3900만원에서 지난해 826억7500만원으로 약 33.7% 증가했다. 위탁수수료와 하역비 등 각종 유통비용이 상승한 가운데 도매법인 영업이익만 크게 늘어 수익 구조 상당 부분을 출하자가 감당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유통비용이 늘면 소비자 물가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다. 농산물 소비자 가격에서 생산자 몫을 뺀 유통비용 비율은 2023년 기준 49.2%로, 10년 전보다 4.2%포인트 높아졌다. 소비자 가격이 1000원이라면 절반에 가까운 492원이 유통단계에서 빠져나간 셈이다.

품목별로 보면 월동무(78.1%) 양파(72.4%) 대파(60.6%) 가을배추(60.2%) 등 주요 서민 식재료의 유통비용률이 특히 높았다. 최근 ‘금사과’ 논란을 일으켰던 사과의 유통비용률도 52.3%로 절반을 넘었고, 쌀 역시 26.4%였다. 도매시장의 중개 수익이 과도하게 발생하는 한 정부의 물가 안정 대책도 효과를 내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주목할 점은 도매시장의 이익이 농민이 아닌 비농업계 자본으로 흘러간다는 것이다. 국민일보가 전국 49개 도매법인 최대주주 현황을 전수조사한 결과 지난해 전체 영업이익의 61.6%는 비농업계 기업(사모펀드·투자·제조업 등)이 운영하는 도매법인이 차지했다.

특히 청과계 ‘큰손’으로 불리는 서울 가락시장 5대 도매법인(서울·중앙·동화·한국·대아청과) 중 농업인 출신이나 생산자단체가 대주주인 곳은 단 한 곳도 없었다. 농업과 무관한 자본이 도매시장을 좌우하면서 농산물 가격 안정보다는 수익 극대화에 초점을 맞춘 의사 결정이 이뤄질 수 있다는 비판이 제기된다.

여기에 도매법인의 불공정 행위까지 더해지면 농민들은 ‘삼중고’를 겪게 된다. 농식품부에 따르면 최근 5년간 도매시장 법인의 법규 위반 및 행정처분 건수는 225건이다. 일부 법인은 수수료 상한선을 초과 징수하거나 하역비를 부당하게 부풀려 출하자에게 부담시켰다.

이런 상황에서 온라인도매시장이 대안으로 주목받고 있다. 전통 도매시장보다 유통비용이 낮고 생산자가 가져가는 몫이 훨씬 크기 때문이다. 지난해 기준 온라인도매시장에서 거래된 청과류의 생산자수취율은 약 91.8%, 유통비용률은 약 8.2%로 나타났다.

정부는 이런 점을 고려해 내년도 온라인도매시장 관련 예산을 약 74.2% 증액했으나 현장에선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걷히지 않고 있다. 현재 온라인 거래 규모는 전체 6% 수준으로 저조하다. 가락시장에서 하역 종사자로 일하고 있는 정해덕(71)씨는 “관련 예산은 늘었지만 여전히 등록을 꺼리는 농가가 많다”고 지적했다.

어 의원은 “지금의 농산물 유통구조는 중간유통업자가 수익을 독식하고 출하자는 제 몫을 받지 못한 채 소비자가 비싼 값을 치르는 왜곡된 구조”라며 “이번 정기국회에서 농수산물 유통구조를 전면 점검하고 공정하고 투명한 유통질서를 바로 세우기 위한 대책을 마련할 것”이라고 말했다.

세종=이누리 기자 nuri@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