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장’, 올리브오일처럼 미국 가정서 필수 재료될 것”

입력 2025-10-17 00:08
미국 뉴욕 맨해튼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YCS)에서 한국의 장(醬)을 연구 중인 스페인 출신 자우마 비에르네즈 셰프가 포즈를 취하고 있다. 샘표 제공

샘표가 미국 맨해튼에서 운영 중인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YCS)’는 장(醬)의 세계화를 실험하는 부엌이자 플랫폼이다. 이곳을 이끄는 자우마 비에르네즈는 정통 프랑스 요리부터 독창적인 파인다이닝까지 두루 경험한 스페인 바르셀로나 출신 셰프로, 한국의 장을 ‘요리의 공용어’로 만들기 위한 실험에 몰두하고 있다.

스페인 알리시아 요리과학연구소 수석 셰프 출신인 자우마 셰프는 2012년 샘표의 제안으로 한국의 장을 연구하게 됐다. 이후 2018년 뉴욕에 문을 연 YCS에서 각국 식문화에 장을 자연스럽게 접목시키고 있다. 그는 “언젠가 사람들이 나를 ‘장 가이’(Jang-guy)라고 부르게 된다면 좋겠다”고 말했다. 국민일보는 지난달 30일 자우마 셰프와 화상 인터뷰를 통해 장의 세계화를 향한 그의 여정과 철학을 들었다. 다음은 일문일답.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의 일상은 어떤 모습인지.

“YCS에는 전형적인 루틴이 없다. 아침 커피를 마시는 것 외에는 그날그날 다르게 흘러간다. 어떤 날은 뉴욕의 셰프 40명을 초청해 쿠킹 클래스를 열고, 또 어떤 날은 기후 주간에 맞춰 비건 창업가들과 모임을 갖는다. 고추장 레시피를 소개하는 영상을 유튜브 쇼츠용으로 촬영하기도 하고, 연두나 된장을 서양식 요리에 녹여내는 실험도 진행한다. 미국인들이 일상에서 장을 자연스럽게 사용할 수 있는 방식을 끊임없이 고민하고 있다.”

-스튜디오에 방문한 사람들의 반응은 어떤가.

“참가자들이 장을 맛보는 순간 대부분 ‘이런 맛이 나올 줄 몰랐다’며 놀란다. 감자 수프에 연두 한 방울, 크리미한 파스타에 된장 한 숟갈만 넣어도 요리가 깊어지기 때문이다. 장은 요리의 ‘빠른 한 스푼’을 가능하게 해준다. 겉보기엔 빠른 요리지만, 그 깊은 맛은 몇 개월간의 발효에서 비롯된다. 발효의 시간이 있기에 몇 초 만에 깊은 풍미를 만들어낼 수 있는 게 장의 마법이다.”

-샘표와 인연은 어떻게 시작됐나.

“연두 컬리너리 스튜디오는 샘표 박진선 대표의 ‘우리맛으로 세계인을 즐겁게’라는 비전에서 출발했다. 스튜디오를 세우자는 아이디어는 샘표를 알리기 위한 목적이라기보다,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모여 한국의 장을 배우고 경험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자는 데서 시작됐다. 나 역시 그 생각에 깊이 공감해 기꺼이 동참하게 됐다. 한국 문화와 한식이 세계적으로 주목받고 있는 만큼, 이를 일시적 유행이 아닌 일상의 일부로 자리 잡게 하고 싶다.”

자우마 셰프가 김치앳홈 키트를 사용해 김치를 요리에 시연하는 모습. 그는 "세계인의 식탁에 K푸드의 뿌리인 장이 올라갈 것"이라며 "훗날 '장 가이'(Jang-guy)로 불리면 좋겠다"고 말했다. 샘표 제공

-샘표의 요리에센스 연두는 어떤 역할을 하는지.

“누구나 입문할 수 있고 장 문화를 넓게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에서 나는 종종 연두를 K팝에 비유해왔다. 연두는 전통 한식 간장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품이다. 100% 식물성 제품이지만 마치 고기를 넣은 듯한 깊은 맛을 낸다. 세계적 식품 박람회 ‘아누가 2025’ 혁신제품으로 선정되며 K푸드의 글로벌 경쟁력을 대표하는 제품으로 평가받는다. 연두는 지금 미국 레스토랑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샘표 제품 중 하나다. 놀라운 건 그중 95%가 아시아 식당이 아니라는 점이다. 미국 셰프들이 먼저 연두의 가능성을 알아봤다.”

-장을 서양 요리에 접목할 때 어려운 점이 있다면.

“가장 큰 장애물은 ‘관성’이다. 장모님만 해도, 내가 아무리 장에 대해 이야기해도 평생 써오신 레시피를 쉽게 바꾸려 하지 않으신다. (웃음) 사실 나도 2012년 샘표 초청으로 처음 한국에 왔을 때, 연두는 첫맛부터 마음에 들었지만 된장은 꽤 강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지금은 오히려 된장이 가장 좋다. 된장은 마치 재즈처럼 처음엔 낯설지만, 알수록 빠져들게 되는 매력이 있다. 익숙한 조리법을 바꾸는 건 쉽지 않지만 한 번 맛보면 생각이 달라진다. 젊은 세대는 훨씬 개방적이고 실험적이라, 고추장 미트볼이나 된장 파스타 같은 새 조합도 미국에서 점점 사랑받고 있다.”

-한국 장의 경쟁력은 무엇이라고 보는지.

“콩이라는 재료에서 이렇게 다양한 풍미를 끌어낸다는 건 정말 놀라운 일이다. 특히 장은 채소를 맛있게 만들어준다. 서양에서는 채소 요리를 지루하게 느끼는 경우가 많다. 한국 요리는 원래 채소 중심이고, 장이 그 맛을 완성시켜준다. 비건이나 플렉시테리언 식문화가 확산하는 요즘, 장은 그 흐름에 딱 맞는 ‘비밀 무기’라고 생각한다.”

-글로벌 시장에서 K푸드와 장의 미래 전망은.

“몇 년 후에는 연두나 된장 같은 장이 미국 가정의 주방에서 빠질 수 없는 재료가 될 것이라 생각한다. 연두는 이미 홀푸드, 크로거, 셰프스웨어하우스 같은 대형 유통망에 입점해 있다. 고추장이나 김치도 이제는 이국적인 음식이 아니다. 앞으로는 장의 품질과 발효 깊이에 대한 소비자 눈높이가 훨씬 높아질 것이다. 와인이나 올리브오일처럼 말이다.”

-셰프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다면.

“지금까지의 경력이 다 꿈만 같았다. 엘불리, 알리시아 재단, 샘표 YCS까지 최고의 동료들과 함께 일할 수 있었다. 언젠가는 카탈루냐 해변에 작은 레스토랑을 열고 싶다. 좋은 와인, 올리브오일, 그리고 장을 곁들인 소박하고 정성 어린 음식으로 손님을 맞이하는 삶이 마지막 꿈이다.”

이다연 기자 id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