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인이 죽으면 도서관 하나가 사라진다”는 아프리카 격언은 한 사람의 지혜와 경험이 얼마나 소중한지를 일깨워준다.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방대한 지식에 접속할 수 있지만 여전히 삶의 지혜와 통찰은 사람을 통해 전해진다. 세대 간 교감과 나눔, 함께 살아가는 관계의 회복은 지금 우리 시대에 더 절실한 가치이다.
인생의 방향을 잃고 흔들릴 때 누군가가 곁에 있다면 상황이 다르지 않을까. 내 고민을 조용히 들어주고 지지와 조언을 건네주는 사람, 실패를 판단하지 않고 오히려 함께 걸어주는 사람. 우리에게는 그런 사람이 필요하다. 그리고 누군가에게는 내가 바로 그런 사람이 될 수 있다.
지난해 로잔운동 글로벌 공청회에서는 전 세계 교회들이 다음세대를 위해 집중해야 할 일곱 가지 사역 가운데 필자의 눈을 끈 항목은 바로 ‘젊은이들의 리더십 개발을 위한 멘토링’이었다. 공청회 보고서는 “젊은이들이 연장자들과 멘토링 관계를 맺어야 할 특별한 영적 필요성이 있다. 이는 단지 유익한 관계를 넘어서 제자도와 선교적 삶을 위한 중요한 수단”이라고 기록했다. 실제로 다양한 문화권에서 이 멘토링의 필요성이 반복해서 언급됐고 세대 간의 교류가 삶과 신앙의 깊이를 더하는 길임을 확인할 수 있었다. 이 내용들은 멘토링이 교회의 다음세대를 짊어질 젊은이들을 섬기기 위한 것뿐 아니라 기독교 공동체의 과제임을 말하고 있다.
오늘날의 청년 세대는 대체로 이전보다 더 높은 교육을 받았고 빠르게 변화하는 사회에 민감하게 반응할 줄 안다. 하지만 그 이면에는 고립감과 단절 그리고 방향 감각의 상실이라는 그림자도 함께 존재한다. 개인의 자율성은 강조되지만 마음을 나눌 공간은 점점 사라지고 있다. 가족 안에서조차 자신의 이야기를 온전히 털어놓기 어려운 현실, 복잡한 질문을 던질 대상이 없다는 외로움. 이것이 이 시대 많은 청년이 직면한 진실이다. 그렇기 때문에 감정과 경험을 나누고 삶의 의미를 함께 찾아가는 진정한 공동체, 그리고 관계 중심의 멘토링이 조명될 필요가 있다고 본다.
멘토링은 고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된 단어다. 오디세우스가 아들 텔레마코스를 맡긴 지혜로운 조언자 멘토에서 그 이름이 왔다. 오늘날 멘토링은 다양한 분야에서 사용되지만 본질은 동일하다.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의 인생 여정을 돕고 함께하는 관계, 그것이 멘토링이라고 할 수 있다. 단지 조언이나 기술을 전수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방향을 함께 고민하고 실패와 상처를 함께 견디며 존재의 의미와 사명을 발견하도록 돕는 일이다. 멘토링은 결국 사람을 사람답게 살게 하는 관계 안에서 함께 걷는 삶의 여정이다.
사도 바울은 “그리스도 안에서 일만 스승이 있으되 아비는 많지 아니하니”(고전 4:15)라고 말했다. 우리 시대에도 정보는 넘치고 가르치는 사람은 많다. 하지만 아비처럼 품어주는 사람, 끝까지 함께 걷는 사람은 드물다.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하셨던 방식은 바로 이런 관계였다. 소수와 깊이 있는 삶을 나누며 시간을 들여 하나님 나라를 심으셨다. 그렇다면 오늘 우리도 누군가의 인생에 진심으로 동행하는 멘토가 될 수 있지 않을까.
변화를 만드는 것은 결국 한 사람이다. 멘토링은 쉽지 않다. 빠른 시대에 느린 과정을 필요로 하고 에너지와 시간, 인내가 필요하다. 때로는 오해도 있고 실망도 있다. 하지만 한 사람의 삶에 깊이 개입해 그의 존재와 사명을 일깨우는 이 일은 그 어떤 사역보다도 복음적이며 공동체적이다. 그 한 사람이 변화하면 공동체가 바뀌고 사회가 바뀐다. 이것은 바로 교회가 존재하는 이유이며 이것이 바로 복음의 능력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에게는 스승이기 이전에 아비가 되고, 사역자이기 이전에 동행자가 되고, 지도자이기 이전에 친구가 되는 사람이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인 교회는 그 자체로 강력한 멘토링 공동체가 될 수 있다. 함께 걸어줄 사람, 그 한 사람을 찾아보자. 그 한 사람이 되어 보자.
이대행 엠브릿지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