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일 재계 세 번째 연례 회동… 3국 협력 플랫폼 자리잡나

입력 2025-10-16 02:03
제3회 한·미·일 경제대화(TED)에 참석한 3국의 정·재계 인사들이 15일 일본 도쿄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관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TED는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가치를 공유하는 3국이 경제·안보 융합 시대의 복합 위기를 함께 극복하고 협력 방안을 모색하기 위해 2023년 11월 출범시킨 민간 협의체다. 이번 행사에는 세 나라 정부와 의회, 기업 등에서 주요 인사 100여명이 참석했다. 연합뉴스

미국발 관세 압박과 미·중 무역 갈등으로 대외 불확실성이 커진 상황에서 국내 주요 그룹 총수들이 1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한·미·일 경제대화’(TED)에 참석해 위기 극복 방안을 모색했다. TED는 한·미·일 3국 협력의 새로운 장을 연 것으로 평가받는 2023년 8월 미 캠프데이비드 정상회의의 분위기를 이어 받아 민간 주도로 출범한 협의체다. 이번 회의에선 글로벌 공급망 재편, 첨단기술 경쟁, 통상 리스크 등 복합 위기에 공동 대응하는 3국 차원의 협력 방안이 핵심 의제로 다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한국 경제계 입장에선 3국 정부·의회와의 소통을 통해 경영에 영향을 미치는 정책 변화에 의견을 개진하고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기회로 삼을 수 있다.

특히 미 정부의 관세 정책은 한·일 양국 산업계에 중요한 변수로 작용하고 있는 만큼 관세 부담 완화, 원산지 규정 개선 등 실질적인 협력 방안이 논의됐을지 주목된다.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왼쪽부터)과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15일 일본 도쿄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제3회 한·미·일 경제대화’(TED)에 참석해 인사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재계에 따르면 도쿄 일본경제단체연합회(게이단렌) 회관에서 열린 TED에는 정의선 현대자동차그룹 회장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조현준 효성그룹 회장 등이 참석했다. 미국 측에선 이 모임을 주도해온 공화당의 빌 해거티 의원을 비롯해 조지 글래스 주일 미국대사, 앨리슨 후커 미 국무부 정무차관과 퀄컴, 페덱스 등의 기업이 자리했다. 일본에서는 게이단렌을 주축으로 도요타자동차, 소니그룹, NEC 등의 관계자가 참석했다. 글로벌 싱크탱크인 우드로윌슨센터와 허드슨연구소, 21세기정책연구소 등이 공동 주관하며 현대차그룹이 후원사다. 이들은 전날 도쿄에서 만찬 행사를 한 데 이어 이날 부문별 토론을 진행했다.

해거티 의원은 이 자리에서 중국 정부의 한국 조선업 제재, 희토류 수출 중단 등을 거론하면서 가장 큰 우려 사항으로 중국을 지목한 것으로 알려졌다. 해거티 의원은 보스턴 컨설팅 그룹 재직 당시 도쿄에서 근무한 경험이 있고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집권 1기 때 주일 미국 대사를 지낸 일본통이다.

정의선 회장은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행사에 참석했다. 정 회장은 이번 방일을 계기로 일본 내 현대차 사업 전반을 점검하고 도요타와의 전략적 협력 가능성을 모색했을 것으로 보인다. 수소차 개발에 대규모 투자를 해온 두 회사는 인프라 구축, 부품 표준화 등 수소 생태계를 확장하기 위한 전략적 연대를 검토 중이다.

오픈AI가 주도하는 700조원 규모 초대형 인공지능(AI) 인프라 구축 사업인 ‘스타게이트’ 프로젝트 참여를 공식화한 이재용 회장은 TED에 참석한 글로벌 기업들과 AI 분야의 협력 문제를 논의했을 가능성이 높다. 삼성전자는 일본의 반도체 소재·부품·장비 업체들과의 협력도 강화하고 있다. 이 회장은 올해 4, 5, 8월 일본을 방문하는 등 일본 재계와의 관계를 공고히 하는 데 공을 들이고 있다. 조현준 회장은 미국 데이터센터 확장과 관련해 전력·송전망 시장 협력 방안을 논의한 것으로 전해졌다.

한국 측 참석자들은 오는 28일 시작되는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최고경영자(CEO) 서밋에 대한 관심과 적극적인 참여도 당부했다고 한다. CEO 서밋은 얼마나 많은 글로벌 빅테크 인사들이 참석해 교류하느냐에 따라 성패가 좌우된다. 현재 젠슨 황 엔비디아 CEO, 샘 올트먼 오픈AI CEO, 맷 가먼 아마존웹서비스 CEO 등의 참석이 확정됐거나 참석 가능성이 높은 상태다. 틱톡, 알리바바, 화웨이, 샤오미, 비야디, 딥시크 등 중국의 IT·플랫폼·전기차 기업의 핵심 인사들의 참석 가능성도 거론된다. 세계 1위 배터리 기업인 중국 CATL의 쩡위췬 회장도 방한해 국내 완성차·배터리 기업 총수들과 만날 예정이다. 재계는 가급적 많은 ‘빅샷’들을 초청하기 위해 역량을 총동원하고 있다.


TED는 정부 협의체인 한·미·일 경제안보대화와는 별개로 정·재계, 의회, 싱크탱크를 포괄하는 민간 플랫폼을 연례적으로 가동하는 기틀을 마련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23년 11월 미 샌프란시스코에서 열린 1차 회의에선 3국 기업들이 직면한 공급망 문제, 첨단기술 패권 경쟁 등 경제안보 위협에 대해 공동 대응하기 위한 실질적인 협력 방안이 주로 논의됐다. 이와 함께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라는 공동가치를 바탕으로 상호이익을 확대하는 전략적 파트너십을 공고히 한 계기가 된 것으로 평가된다.

2차 회의는 지난해 9월 서울에서 열렸다. 당시 참석자들은 3국 협력이 경제와 기업에도 새로운 기회가 되고 있으며 기업들이 안정적이고 복원력 있는 공급망 구축을 이어갈 수 있도록 정부와 의회가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는 데 공감대를 형성했다.

다만 재계 안팎에선 TED가 지난 정부에서 태동한 협의체라는 점에서 현 정부 들어 추진 동력이 다소 떨어진 것 아니냐는 평가도 나온다. 재계 관계자는 “지난해 서울에서 열린 회의 때와 비교하면 관심이나 주목도가 덜 한 건 사실”이라며 “TED는 복합 위기 속에서 3국간 경제 안보 협력을 강화하는 중요한 플랫폼인 만큼 AI, 반도체, 배터리 등 첨단 분야에서 기술 동맹을 강화하고 안정적인 공급망을 구축하는 데 실질적인 도움이 되도록 적극 활용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권지혜 기자 jh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