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항생제 공화국

입력 2025-10-16 00:40

영국의 의사이자 생물학자 알렉산더 플레밍은 1928년 푸른곰팡이(페니실리움)에서 한 가지 물질(페니실린)을 발견한다. 이 물질은 세균의 성장을 억제하거나 세균을 죽이는 효과가 있었다. 세균의 세포벽, 세포막, 단백질 합성 등의 기능을 억제하여 감염을 일으키는 세균들을 치료하는 데 매우 유용하게 사용된 것이다. 바로 항생제다. 이를 토대로 1940년대부터는 다양한 항생제들이 개발되어 현재에 이르고 있다. 이런 공로로 플레밍은 194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게 된다. 현대의학의 최대 산물이라고 꼽히는 항생제는 세균 감염 예방과 치료에 필수적으로, 지난 수십년간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명을 구했다.

인류를 구원할 기적의 물질로 불렸지만 최근에는 그렇지 못하다. 내성으로 인류를 위협하는 재앙으로 돌변했다. 무분별한 항생제 사용은 ‘슈퍼박테리아’로 불리는 내성균을 키워 인류 건강에 심각한 위협이 되고 있다. 영국 경제학자 짐 오닐은 전 세계적으로 2050년에는 연간 1000만명 이상이 내성균으로 사망하고, 치료비용만 100조 달러에 달할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기도 했다.

미국, 독일 등 선진국들은 항생제 사용을 최대한 자제하고 있지만 우리는 다르다. ‘항생제 공화국’이라고 불릴 정도로 항생제 오·남용이 심각하다. 최근 발표된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통계에 따르면 2023년 기준 한국의 항생제 사용량은 인구 1000명당 하루 31.8 DID를 기록했다. OECD 회원국 중 두 번째로 높은 수치다. 2022년 25.7 DID로 상위 4번째를 차지했던 것보다 상황이 더욱 심각해진 것이다.

세계보건기구(WHO)는 2019년 항생제 내성을 인류의 생명을 위협하는 10대 요인으로 지목했다. 항생제가 듣지 않는 내성균에 감염되면 치료가 어려워지고 이는 입원 기간 증가, 치료 비용 상승, 심하면 사망으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 특히 면역력이 약한 노인과 어린이에게는 치명적이다. 단순 감기에도 항생제를 과다 처방하는 것이 우리의 현실이다. 이래서는 항생제 공화국의 오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김준동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