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고령사회 접어든 대한민국
고령자 숫자 1000만명 넘어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후 보낼
'실버스테이' 주거 모델 절실
AI에 헬스케어 서비스 접목한
실용적 고령친화도시 구축해야
고령자 숫자 1000만명 넘어
베이비부머 세대가 노후 보낼
'실버스테이' 주거 모델 절실
AI에 헬스케어 서비스 접목한
실용적 고령친화도시 구축해야
초고령사회에 접어든 지금, 1000만명이 넘는 우리나라 고령자들은 어디서 노후를 보내고 싶어 할까. 식사를 챙겨주고 집안일을 대신해 주며, 간호사들이 상주하는 메디컬센터가 있어 아플 때 언제든 서비스를 받을 수 있고, 피트니스센터와 산책로가 조성된 야외정원이 있어 운동할 수 있고, 취미 생활을 즐길 수 있는 도서관과 카페도 있는 곳. 민간에서 운영하는 고가의 실버타운이 바로 그런 공간이다. 문제는 보증금만 수억원에 월 이용료도 수백만원을 넘겨 일부 부유층만 입주할 수 있는 ‘호텔식 주거공간’이라는 점이다.
고령인구가 전체의 5분의 1을 넘은 우리 사회에서 대부분 고령자는 생소한 곳으로 옮기기보다 지금 사는 집과 동네에서 나이 들고 싶어 한다. 소위 ‘에이징 인 플레이스(Aging in Place)’ 개념이다. 하지만 대다수 일반 주택은 고령자를 위한 편의시설이나 돌봄 서비스가 거의 없는 단순한 ‘거주 공간’에 불과하다. 지금의 제도는 소득이 아주 낮은 사람에게는 공공임대 노인복지주택을, 자산이 많은 사람에게는 고급 실버타운을 제공할 뿐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주거모델은 사각지대에 놓여 있다. 고령자를 위한 의료와 돌봄, 여가가 결합된 주거를 공급하는 모델은 운영 비용 부담 때문에 민간에서 섣불리 나서기 어려운 구조다. 그렇다고 정부가 대규모 예산을 들여 증가하는 중산층 고령자를 충족시킬 수 있는 시설을 충분히 지을 수도 없는 것이 현실이다.
베이비부머 세대의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우리가 직면하게 될 사회는 중산층 고령자의 빠른 증가다. 이들을 위한 주거모델이 필요하다. 정부가 도입한 ‘실버스테이’는 중산층 고령자를 타깃으로 시세의 95% 임대료와 계약 갱신 시 연 5% 이내의 임대료 인상으로 제한하고 있지만, 공급 물량이 충분하지 않고 월 이용료 부담도 중산층에게는 만만치 않다. 결국 자신이 살던 곳에서 계속 살면서 서비스를 제공받는 에이징 인 플레이스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기존 거주지역을 고령친화적으로 전환하는 것이 현실적이다.
최근 공급되는 아파트와 주상복합 단지에서는 식당, 피트니스센터, 카페, 도서관과 같은 주민공동시설과 커뮤니티 서비스가 등장하고, 재개발·재건축 현장에서는 주요 건설사들이 인공지능(AI) 건강관리 플랫폼과 원격진료, 응급상황 감지 및 병원 연계 서비스를 제안하고 있다. AI 기술로 혈압과 혈당을 측정하고, 수면과 운동 데이터를 분석해 건강 상태를 예측하는 AI 기반 건강 관리형 아파트도 제안되고 있다. 외로운 노인과 대화하며 정서적 지지를 주는 AI와 거주자의 관심사·건강 상태·활동 패턴을 분석해 운동모임, 취미클럽, 봉사활동 등 커뮤니티 프로그램을 추천하는 AI 커뮤니티 매칭 기술도 연구되고 있다. 서울시와 같은 지자체에서는 AI와 사물인터넷(IoT)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 돌봄 모델도 운용하고 있다. 이러한 흐름은 중산층 고령자를 위한 새로운 주거모델의 가능성을 보여준다.
이 모델을 실현하기 위해서는 정책적 지원이 필수적이다. 재개발·재건축, 공동주택 단지에 AI 헬스케어 플랫폼을 도입할 경우 용적률 인센티브와 세제 혜택 등을 제공하거나 공공기여로 대체하여 민간 투자를 유도해야 한다. 현재 재개발·재건축 사업의 고령서비스 관련 용적률 인센티브는 전통적 노인복지시설을 중심으로 설계돼 있어 원격진료와 건강 모니터링, 낙상 감지 등 AI 헬스케어 서비스에도 적용해야 한다. 단독주택과 다세대주택이 밀집한 일반 주거지에는 고령자의 도보권 안에서 돌봄, 의료, 여가 시설을 이용할 수 있는 ‘고령자 보행일상권’을 설정하고, 거기에 AI 헬스케어 서비스를 도입해야 한다. 많은 지방자치단체가 이미 노인복지 예산을 운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활용해 AI 헬스케어 플랫폼을 구축할 수 있다.
AI 헬스케어 주거단지는 공공의 지원과 민간의 혁신을 결합해 기존 공공의 고령자 복지주택과 고가 실버타운 사이의 공백을 메우는 해법이다. 중산층 고령자에게 건강과 안전, 사회적 연결을 제공할 뿐 아니라 돌봄 인력 부족을 완화하고 헬스케어, 로봇, 데이터 분석 등 새로운 산업도 키울 수 있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누구나 기품 있는 노후를 보낼 수 있는 고령친화도시를 만들기 위해 지금이 바로 투자와 제도개선이 필요한 때다. 초고령화를 기회로 삼아야 한다는 말은 더 이상 구호가 아닌 당면 과제다.
우명제 서울시립대 도시공학과 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