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물결·강물결·꽃물결… 전남 나주… 평야에 우뚝한 금성산에 올라 영산강 너머 무등산도 한눈에…

입력 2025-10-16 02:32
전남 나주시 노안면 이별재 인근 금성산 줄기에서 바라본 이른 아침 풍경. 멀리 무등산 뒤로 여명이 밝아오면서 왼쪽 무안광주고속도로와 일대 곡창지대가 어둠 속에서 깨어나고 있다.

전남 나주는 고려 왕조(918~1392년)의 근간이었다. 903년 왕건이 견훤을 물리치며, 완사천에서 오씨부인 장화왕후와 맺은 인연으로 912년 2대 혜종이 태어났다. 940년 금산군을 나주, 983년 나주목, 1018년엔 전주와 함께 전라도가 됐다. 충렬왕은 금성산에 정녕공이라는 작호를 내렸다. 조선시대에는 ‘작은 한양’이었다. 조선시대 지리지인 이중환의 ‘택리지’에 ‘나주는 금성산을 등지고 영산강을 두르고 있어 읍의 지세가 한양과 비슷하므로 예부터 이름난 인물이 많다’고 기록돼 있다.

나주의 옛 이름은 금성(錦城)이다. 나주의 진산이 금성산이다. 높이 451m로 낮지만 평야와 낮은 언덕이 많은 나주에서는 가장 높은 산이다. 동쪽 노적봉, 서쪽 오도봉, 남쪽 다복봉, 북쪽 정녕봉 등 4개 봉우리로 이뤄져 있다. 현재 월정봉, 두꺼비봉, 낙타봉, 장원봉으로 불린다. 나주평야에 우뚝 솟아 영산강 물줄기를 안고 나주 역사 문화의 중심 역할을 해오고 있다.

금성산에서 북쪽으로 8㎞가량 뻗어 있는 곳에 옥산(玉山·336.2m)이 있다. 용머리처럼 기다란 능선은 멀리서 보면 거대한 성벽처럼 보인다. 옥산은 일제가 1등 삼각점을 산의 정수리에 설치할 정도로 나주평야 전체를 굽어보는 중요한 위치에 있다.

옥산에서 병풍산으로 이르는 능선에 이별재가 있다. 전설이 안내판에 담겨 있다. 옛날 이 고개에는 연못이 있었으며, 가마 타고 신행(新行)하던 신부가 이 고개를 넘지 못하고 신랑과 이별했던 일이 있고 난 뒤로 이별재라 전해진다고 한다. 바로 옆에 연못이 복원돼 있다.

이별재에서 옥산 방향으로 산길을 10여 분 오르면 시야가 탁 트이는 바위 지대가 나타난다. 일출 명소다. 바로 아래 무안광주고속도로가 지나고 황금빛으로 물들어가는 평야 너머 광주 시내와 무등산도 뚜렷하다. 수평선에 희미하게 올라오는 붉은 여명 위로 많은 별들이 반짝거린다. 샛별로 불리는 금성이 도드라진다. 가을철 안개가 깔리면 선경이 따로 없다.

고려 건국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나주에 983년(성종 2년) 전국 12목(牧) 가운데 하나인 나주목이 설치됐다. 조선 후기인 1895년 나주목이 폐지될 때까지 300여 명의 목사가 있었다. 금성산 아래에 금성관(보물 제2037호)이 웅장하게 서 있다. 금성관은 조선시대 지방 관아의 객사 중 규모가 가장 크다. 특히 팔작지붕을 하고 있어서 일반적인 맞배지붕의 정청과 대비되는 희귀성을 갖는다. 궁궐 정전과 유사한 평면 구성이 특징이다.

궁궐 정전과 유사한 평면 구성을 지닌 금성관 전경.

금성관 남쪽 금천면 고동리 영산강에 들섬이 있다. 이 일대에 24만㎡ 규모의 대규모 꽃밭이 조성돼 있다. 1억 송이 코스모스가 피어나 가을 풍경을 연출하고 있다. 바로 옆은 영산강정원이다. 이곳에서 오는 29일까지 ‘영산강, 정원이 되다’라는 주제로 ‘제6회 전라남도 정원페스티벌’이 펼쳐지고 있다. 대표정원 1곳, 작가정원 4곳, 동행정원 8곳, 시민정원 20곳 등 33개의 정원이 조성돼 있다.

영산강 들섬의 대규모 코스모스 밭에 설치된 조형물.

특히 댑싸리정원이 시선을 끈다. 솜사탕처럼 둥근 모양의 댑싸리는 빗자루의 재료로 쓰여 ‘빗자루 풀’이라고도 불린다. 여름까지는 푸른빛을 띠다 가을이 되면 붉게 물든다. 이곳 0.7㏊에 댑싸리 8000여 주가 붉은 융단을 펼쳐놓은 듯 가을을 수놓고 있다.

영산강정원 내 댑싸리 군락 뒤로 지나가는 ‘코끼리열차’.

들섬 아래는 영산포다. 선착장에 영산포 등대가 있다. 일제강점기인 1915년 세워져 목포까지 48㎞ 뱃길을 왕래하던 선박들의 길잡이이자 영산강의 수위를 재는 역할을 동시에 수행했다. 이 선착장에서 황포돛배를 탈 수 있다. 선착장 바로 옆은 홍어거리다.

분홍빛 물결은 반남면 국립나주박물관 일대에서 만날 수 있다. 정자 옆 거대한 고분 2기 주변에 핑크뮬리가 화려한 시절을 뽐내고 있다. 그 사이에서 연인·가족·친구들이 인증샷을 남기느라 여념이 없다. 도로 맞은편 덕산리 고분군에선 좀 더 여유롭게 가을꽃을 감상할 수 있다. 넓은 들녘을 채운 주황색 황화 코스모스 뒤로 옛 고분이 봉긋하다.

국립나주박물관 옆 마한시대 고분을 수놓은 핑크뮬리.

일대 반남고분군은 일제강점기인 1917년 발굴돼 세상에 알려진 영산강 유역 마한시대 역사유적이다. 다른 지역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대형 독널(옹관)과 금동관, 금동신발, 봉황문 고리자루칼(환두대도) 등 영산강 유역 지배 세력의 위상을 보여주는 다양한 유물이 출토됐다.

여행메모
양천리에서 1시간 30분 등산 ‘이별재’
부드럽고 담백한 곰탕과 알싸한 홍어

이별재는 광주광역시와 인접한 전남 나주시 노안면에 있다. 수도권에서 승용차로 이동한다면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남장성분기점에서 광주외곽순환고속도로로 갈아탄 뒤 남광산나들목에서 빠지면 가깝다. 내비게이션에 '노안면 양천리 556-2'를 검색하면 된다. 이후 약 1시간 30분 등산해야 닿는다.

나주곰탕이 대표 먹거리 중 하나다. 쇠고기 육질이 부드럽고 살코기의 맑은 국물이 담백하다. 영산포 홍어도 빼놓을 수 없다. 과거 흑산도에서 출발해 영산포로 들어오던 홍어는 다른 생선과 달리 상하지 않고 삭아 있어 유명해졌다.

숙박시설도 많다. 나주시 직영 나주 목사내아 금학헌(전남 문화재자료 제132호) 전통 한옥에서 남도의 멋과 풍류를 즐길 수 있는 하룻밤 묵을 수 있다. 이곳에서 가까운 '3917마중'은 폐가 고택 7채를 복원해 만든 복합문화공간이다. 민간정원과 함께 고택스테이, 전통 디저트 카페, 전시와 공연이 어우러져 있다.



나주=글·사진 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