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수 장안산 억새 ‘장안의 화제’
‘산고수장(山高水長)’의 고장 전북 장수(長水)는 오지 중의 오지로 꼽힌다. 그 가운데 장수 장안산(長安山·해발 1237m)이 있다.
장안산 들머리는 ‘용이 춤을 춘다’는 무룡고개다. 백두대간에서 갈린 금남호남정맥이 영취산을 벗어나면서 제일 먼저 숨을 고르는 고개다. 무룡고개가 해발 900m여서 정상까지 고도 300여m만 올라가면 정상에 닿는다. 잘 정비된 등산로 곳곳에 야자 매트가 깔려 있어 ‘내내(長) 편안(安)’한 산이다. 무룡고개에서 정상까지는 편도 3.2㎞로 왕복 3~4시간 걸린다.
장안산의 명물은 산등에서 동쪽 능선으로 펼쳐진 광활한 억새밭이다. 들머리에 마련된 무료 주차장에서 푹신하고 순탄한 길을 따라 30~40분쯤 오르면 갑자기 시야가 확 트이면서 은빛 물결을 만난다. 첫 번째 전망대가 마련돼 있다. 규모는 크지 않지만 산등성이 전체가 하얗다.
능선을 따라 약 1㎞를 더 가면 계단 옆 가파른 경사면에 또 다른 억새밭이 반긴다. 바람에 일렁거리는 억새 물결 아래로 깊은 골짜기가 펼쳐지고 산줄기가 첩첩이 이어진다. 반대편으로는 남덕유산 끝자락 산줄기가 손에 잡힐 듯하다. 이곳부터 정상은 약 300m다. 정상 직전 억새밭도 일품이다.
밀양 ‘영남 알프스’ 천황산·재약산
경남 밀양시 산내면과 경북 청도군 운문면, 울산 울주군 상북면 등에 걸쳐있는 높이 1000m 이상 되는 산군(山群)은 ‘영남 알프스’로 불린다. 이 가운데 밀양시에 포함되는 천황산(사자봉·1189m), 천황재, 재약산(수미봉·1108m), 사자평습지로 이어지는 능선에 억새가 장관을 이룬다.
1000m 넘는 산이지만 크게 힘들이지 않고 오를 수 있다. 영남알프스얼음골케이블카를 타면 약 10분 만에 1020m까지 공간 이동을 할 수 있다. 상부 승강장에서 천황산은 1시간∼1시간 30분, 재약산은 2시간∼2시간 30분 걸린다.
샘물상회 갈림길에서 천황산 정상을 향한 등산로 양옆으로 바람에 나부끼는 솜털 같은 억새꽃이 은빛 물결처럼 일렁인다. 파란 하늘을 향해 끊임없이 손짓하는 억새를 보고 걷노라면 힘든 줄 모르고 정상에 닿는다.
천황산에서 천황재는 1㎞, 재약산은 1.8㎞다. 천황산에서 천황재, 재약산, 사자평습지로 이어지는 코스는 ‘영남알프스 하늘억새길’ 3구간 사자평억새길의 하이라이트다. 계단을 따라 해발 800m의 안부 천황재에 내려서면 사방이 광활한 억새밭이다.
재약산 정상에 이르면 풍경이 수고를 보상해 준다. 발아래 광활한 사자평습지와 너머로 멀리 울산 울주군의 간월산과 신불산, 영축산 능선이 파노라마처럼 이어진다. 사자평은 약 4㎢(120만평) 규모로 국내 최대 억새 군락지다. 일제강점기 때 일본인들이 스키장을 만들기 위해 숲을 베어내고 초지를 만들었지만 눈이 많이 내리지 않는 기후 탓에 스키장 개발은 백지화됐고, 6·25전쟁 이후 화전민이 불을 놓아 나무를 태우고 밭을 일구면서 평원이 형성됐다.
‘서해의 등대산’ 보령·홍성 오서산
충남 보령과 홍성 경계에 전국적 억새 명소이자 충남 제3의 고봉인 오서산(烏棲山·790.7m)이 있다. ‘까마귀 보금자리’라는 이름은 예로부터 까마귀와 까치가 많이 서식한다고 해서 붙었다. 서해와 인접한 천수만 지척에서 갑자기 솟구쳐 올라 예부터 이 일대를 향하는 배들에 등대 구실을 해 ‘서해의 등대산’으로도 통한다.
오서산 주능선엔 10~11월 억새가 장관이다. 억새 우거진 능선길이 약 2㎞ 이어진다. 오솔길 양옆으로 억새가 호위하듯 길을 열어주고, 매서운 바닷바람에 쉴 새 없이 물결친다. 가을바람에 한들거리는 은빛 억새 물결은 해 질 무렵 노을에 황금빛으로 변한다.
억새밭 다음으로 오서산의 자랑은 서해안 조망이다. 멀리 대천해수욕장과 무창포, 외연열도까지 조망할 수 있어 보령 8경 중 절반을 한번에 보는 셈이다. 특히 서해를 붉게 물들이는 낙조풍광이 압권이다.
오서산 억새능선에 가장 빠르게 오르는 방법은 홍성군 장곡면 내원사 인근 쉰질바위에서 출발하는 것이다. 정암사나 내원사에서 임도로 연결돼 있어 차로 접근할 수 있다. 이후 30~40분 걸으면 옛 오서정 자리에 마련된 전망대에 닿는다. 국립오서산자연휴양림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 30분 정도 걸린다. 성연주차장에서 시루봉을 거쳐 오르는 길은 약 3.6㎞로, 2시간 30분~3시간 소요된다.
글·사진=남호철 여행선임기자 hc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