캄보디아 범죄 조직은 한국인 사기·감금 등의 범죄 과정에서 한국인을 ‘미끼’로 내세우는 수법을 쓴다. 일당의 범행은 한국인이 다른 한국인을 범죄에 가담시켜 또 다른 한국인에게 사기 범죄를 저지르는 패턴이 반복됐다. 일당은 철저한 상하관계와 감시 시스템을 갖춰 놓고 감금 피해자이자 범행 가담자들의 이탈을 막고 있는 정황도 포착됐다.
국민일보가 14일 확보한 캄보디아 사기 범죄 관련 판결문에는 이들의 범행 실태가 구체적으로 드러나 있다. 판결문 내용과 현지 관계자의 말을 종합하면 국내에서 지인의 꼬드김에 넘어가 캄보디아에 입국한 이들이 범죄 단지에 감금돼 온라인에서 한국인을 대상으로 사기 행각을 벌이는 행태가 이어지고 있다.
대전지법 천안지원은 지난 5월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주식 리딩방 사기에 가담한 혐의(범죄단체가입, 사기 등)를 받는 20대 남성 A씨에게 1심에서 징역 5년을 선고했다. A씨는 지난해 1월 조직의 모집책이었던 지인으로부터 “해외에서 일하면 월 1000만~1500만원을 벌 수 있다”는 말을 듣고 캄보디아로 출국했다. A씨는 캄보디아 남부도시 프레이벵에 있는 범죄 조직의 사무실에서 약 5개월간 주식 리딩방 ‘매니저’ 역할을 하면서 “고수익 프로젝트에 참여할 기회를 주겠다”고 속여 돈을 뜯어냈다. 범죄 피해액은 총 30억원에 달했다.
A씨를 포함한 조직원들은 고객센터(피해자와 친분을 쌓으며 주식 정보 소개), 매니저(투자방법 설명), 교수(종목 추천), 모집책(신규 조직원 모집), 세탁집(돈을 대포통장으로 수령)으로 각각 세분된 역할을 맡았다. 조직은 사장, 관리자, 팀장, 팀원 등의 직급도 만들어 위계 관계를 형성했다.
범행 발각이나 조직원 이탈을 방지하기 위한 수법은 치밀했다. 조직원이 경찰에 잡히더라도 다른 조직원들의 신상 노출을 막기 위해 서로를 가명으로 불렀다. 근무시간은 오전 6시30분부터 오후 10시로 16시간에 달했다. 근무 중 유튜브를 보면 안 된다는 등 구체적인 규율도 있었다. 규율을 어기면 벌금이 부과되기도 했다. 또 전기방망이를 든 조직원들이 상주하며 조직 구성원들을 감시했다. 여권은 조직에 들어가는 순간 빼앗겼다. 여권을 돌려받기까지는 3개월 이상 걸렸다.
지난 1월 부산지법에서 캄보디아에서 로맨스 스캠(연애 빙자 사기)을 벌인 혐의로 1심에서 징역 4년을 선고받은 남성 B씨의 경우도 비슷했다. 그는 캄보디아 바벳에 있는 범죄 조직 사무실에서 일했다. 이 조직은 중국인이 중간관리자 역할을 맡았다. 사무실 건물은 현지 경비원 5~6명이 입구를 지켰고, 각 층에는 총을 들고 경계를 서 있는 경비원 2~3명이 있었다. 사무실을 출입하려면 출입증을 들고 셀카를 찍어 중국인 관리자에게 보내는 식이었다. 이들도 조직원들끼리 가명을 사용했다.
경찰은 수사를 확대하고 있다. 경북경찰청은 캄보디아 범죄 조직의 고문으로 숨진 대학생 박모(22)씨 통장에 있던 수천만원이 국내 대포통장 범죄 조직에 의해 인출된 것으로 보고 자금 흐름과 자금 인출 연루자들을 수사하고 있다. 또 캄보디아에 구금된 한국인 63명에 대해 한 달 안에 전원 송환을 추진키로 했다. 경찰은 국가수사본부 내에 캄보디아 범죄 종합 대응단을 구성하고, 인천공항 게이트까지 경찰관을 전진 배치해 범죄 노출 위험이 큰 출국도 방지할 방침이다.
조민아 기자, 안동=김재산 기자 minaj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