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 후 소득절벽 불안해… 작년 연금저축 넣은돈 10조 늘어

입력 2025-10-15 00:02
국민일보DB

중견 건설사에 다니는 이모(32)씨는 4년간 개인연금(연금저축)에 매년 400만원씩 붓고 있다. 연평균 수익률이 7%인 데다 55세부터 조기 수령이 가능하다는 장점 때문이다. 이씨는 “법정 정년이 60세라고는 하지만 경기를 심하게 타는 건설업에선 그때까지 버틸 수 있을지 불투명하다”며 “일찍 퇴사하게 되면 개인연금으로 대처하려 한다”고 말했다.

정년퇴직으로 근로소득이 끊겼지만 수급연령에 이르지 못해 국민연금을 받지 못하는 ‘소득 공백(소득 크레바스)’이 커지고 있다. 정부는 정년 연장을 통해 공백을 줄인다는 구상이지만 사회적 논의는 제자리걸음이다. 이 때문에 연금저축을 소득 공백 대책으로 선택하는 청년들이 늘고 있다.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노후 대비를 위한 연금저축 적립금은 지난해 178조6000억원으로 전년 대비 6.3%(10조8000억원) 증가했다. 2020년 151조7000억원에서 2021년 160조1000억원으로 5.5% 올랐다. 2022년 159조원으로 잠시 주춤했지만 2023년에는 167조8000억원으로 껑충 뛰었다.

현행 국민연금 체계 문제가 연금저축 적립금 규모를 키웠다는 진단이 나온다. 국민연금을 받는 나이(수급개시연령)는 단계적으로 올라 2033년부터 65세로 설정된다. 반면 국민연금 보험료를 내는 나이(의무가입연령)는 정년(59~60세)에 맞춰져 있다. 정년퇴직 후 최대 5년간 소득·연금이 없는 상황에 놓일 수 있는 것이다.

연금을 미리 받거나 가입을 연장하는 등 방식으로 소득 공백을 줄일 수는 있지만 경제적 손해를 감수해야 한다. 가입을 연장하는 ‘임의계속가입’은 사업자와 분담하던 보험료(9~13%)를 전액 본인이 부담해야 한다. 연금을 최대 5년 먼저 받을 수 있는 조기노령연금제도는 받는 시점이 1년 당겨질수록 지급액이 6%씩 감액되도록 설계됐다. 연금 수급액이 최대 30% 줄어들 수 있다.

전문가들은 공적 연금의 사각지대를 개인연금이 보완하는 것은 근본 해법은 아니라고 본다. 석재은 한림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다층연금구조 위에서 개인연금이 소득 절벽을 보완하는 역할을 맡아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는 관련 논의를 본격화한다는 방침이다.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은 14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국정감사 업무보고에서 “다층 노후소득보장 체계를 구축하기 위해 국회 연금특위 논의에 적극 참여,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노령연금 소득 감액 제도의 감액기준 완화, 기초연금 부부감액 단계적 축소 등 국민연금의 불합리한 제도도 개선하겠다고 강조했다.

이정헌 기자 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