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남 사투리로 쓴 마가복음 보실라요?

입력 2025-10-15 03:00
게티이미지뱅크

“아따메 수고가 많으시요이. 거시기 인자부텀 저를 따라댕기셔야 쓰겄소. 지비들을 물괴기가 아니라 사램을 낚는 찐한 어부가 되게 해드릴텡게.”

구성진 전남 방언으로 표현된 이 문장의 화자는 다름 아닌 예수다. 성경을 전남 방언으로 번역한 첫 시도가 담긴 책, ‘마가복음 전남 방언’(대한기독교서회) 속 구절이다.


시인이자 목회자인 임의진(57·사진) 기독교대한복음교회 총회 총무는 공동번역성서(1977)와 개역개정판 성경(1998)을 전남 해안 방언 중심으로 번역해 최근 이 책을 펴냈다. 전남 강진 출신으로 40여년간 전남 지역에서 살아온 그는 14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방언 번역이라는 새 시도를 한 이유를 “예수가 생전 사용한 아람어가 갈릴리 지역의 변방 사투리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임 총무는 “예수는 변방의 언어를 쓰며 일반 대중의 삶에 더 가까이 다가갔다”며 “한국 상황으로 보면 (표준어보다) 전남 방언이 주님이 쓴 아람어에 더 가깝다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신약성경에서 예수가 쓴 갈릴리 지역 아람어로는 ‘달리다굼’(소녀여 일어나라·막 5:41)과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막 15:34) 등이 있다.

전라남도 방언으로 번역한 마가복음 본문

“아야, 니는 나가 젤로 사랑하는 아들잉게 나가 아조 겁나게 흡족해부러야.”(막 1:11)
“아따메 수고가 많으시요이. 거시기 인자부텀 저를 따라댕기셔야 쓰겄소. 지비들을 물괴기가 아니라 사램을 낚는 찐한 어부가 되게 해드릴텡게.”(막 1:17)
“예말이요, 성님 동상님덜. 인자부텀 온 천하에 댕김서 몽조리 만나는 사램들마다 그간 알캐드린 복음을 전하셔야 쓰겄소.”(막 16:15)

<자료: ‘마가복음 전남 방언’(대한기독교서회)>

본문엔 전라도 특유의 감탄사나 해학적 표현이 반영된 부분이 적잖다. 예수가 세례 요한에게 세례를 받을 때 하늘에서 들려온 소리를 “아야, 니는 나가 젤로 사랑하는 아들잉게 나가 아조 겁나게 흡족해부러야”라고 표현하는 식이다.(막 1:9~11) 예수가 귀신을 내쫓아 인근 지역에 이름난 부분은 “웜마, 예수의 소문이 그 시로 온 갈릴리 사방에 쫙~하니 퍼져불었재”(막 1:28)라고도 번역한다. 부활한 예수가 제자들에게 내린 마지막 사명 역시 친근하게 표현됐다. “예말이요, 성님 동상님덜. 인자부텀 온 천하에 댕김서 몽조리 만나는 사램들마다 그간 알캐드린 복음을 전하셔야 쓰겄소.”(막 16:15)

전남 방언 어휘 풀이를 매 쪽 하단에 수록한 것도 특징이다. 무언가를 말할 때 뭉뚱그려 쓰는 말인 ‘거시기’를 비롯해 ‘아이사까’(아니나 다를까) ‘옹공스럽다’(다정스럽다) ‘굉기하다’(공교롭다) ‘오구감탕시럽다’(매우 만족스럽고 행복하다) 등 표준어 사용자에게 생경한 어휘가 간단없이 이어진다.

무안 제주항공 참사로 누나와 여동생을 잃은 아픔도 성경을 전남 방언으로 번역하는 주요 계기였다.

그는 무안공항에 차려진 임시 쉼터에서 두 누이를 그리며 전남 방언으로 예수의 말을 조금씩 번역했다고 한다. 임 총무는 "사회에선 주로 표준어를 쓰니 모어(母語)를 사용할 경우가 좀처럼 없는데 누이와는 전남 방언을 썼다. 모어로 마음을 터놓고 나눌 이가 사라지니 마음이 너무 아팠다"고 했다. 이어 "이들을 그리며 쉼터에서 성경을 읽는데 예수의 말이 사투리처럼 느껴졌다. 이때 마음에 무언가 빛이 들어오는 게 느껴졌다"며 "그 빛을 따라 일주일여간 마가복음을 번역했다"고 말했다.

그가 가장 공들여 번역한 부분은 최후의 만찬 등 예수의 수난 과정과 수제자 베드로가 예수를 부인한 뒤 자책하는 내용이다. 임 총무는 "아픔을 겪은 제 상황 때문인지 마가복음 끝부분의 수난 부분을 집중해 번역하게 됐다"며 "스승을 부인하는 나약한 베드로에게서 고통을 거부하고픈 제 모습을 발견하기도 했다"고 고백했다.

책 곳곳에는 민중미술가 홍성담 전정호 화백의 판화 작품 30점도 실렸다. 오는 30일 광주에서는 북콘서트가, 다음 달 25일부터 12월 3일까지는 서울서 삽화 전시와 북콘서트가 열린다.

임 총무는 "방언으로 기록한 책이란 점에서 언어학적 가치가 충분해 종교와 상관없이 흥미롭게 읽을 수 있다고 본다"고 했다. 그러면서 "어떻게 보면 이번 신간은 눈물의 잉크로 쓴, 제겐 '두 목숨과 바꾼 책'"이라며 "책을 받아들면서 잃어버린 가족이 영원히 살아있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책 출간 자체가 큰 위로인 셈"이라고 했다. 아울러 "아픔당한 자, 외로운 자, 소수자의 시선으로 담은 이 책이 고통 중의 이웃을 기억하게 하는 동시에 이들을 위로하는 매개체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양민경 기자 grie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