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뒤집어… 모성을 일으켜 세우다

입력 2025-10-15 00:08
호암미술관 루이즈 부르주아 회고전에 나온 작품. 퍼포먼스 영상을 배경으로 설치된 ‘웅크린 거미’(청동, 흑색 광택 패티나, 스테인리스강, 270.5×835.7×627.4㎝, 2003). 호암미술관 제공

작은 트렁크 하나 들고 도망치듯 걷는 여자. 애증의 가족사가 자신을 옭아매던 고국 프랑스를 몸서리치듯 떠나는 그는 루이즈 부르주아(1911∼2010)다. 얼굴 형체를 모호하게 처리해 미래에 대한 불안과 기대를 동시에 담아낸 자화상인 것.

경기도 용인시 호암미술관의 부르주아 회고전 ‘루이즈 부르주아:덧없고 영원한’은 작가가 1938년(27세)에 그린 소품 ‘도망친 소녀’로 시작한다. 당시 그는 미대를 졸업하고 아버지가 운영하는 갤러리 옆에 제 갤러리를 차렸다. 손님으로 온 미국인 미술사학자 로버트 골드워터와 만난 지 얼마 안 돼 결혼했고 그를 따라 미국으로 탈출하듯 갔다.

1940년대 이후 현대미술의 심장 뉴욕에서 분투하던 그는 71세이던 1982년에야 뉴욕 현대미술관(모마)에서 여성 작가로는 처음 회고전을 열었다. 유럽에서 온 여성 작가로서 남성 중심 미국 미술계의 주류로 당당히 진입했다. 백인 남성 화가가 이끄는 추상화가 미국 화단을 휩쓸며 주목받지 못하던 그는 80년대 이후 포스트모더니즘의 부상으로 신체성, 여성성이 주목받으며 주류로 편입이 됐다. 88세이던 99년에는 베니스비엔날레 황금사자상을 받았다. 2000년 런던 테이트모던에 설치한 시그니처 ‘마망’(엄마)으로 대중에게도 각인되며 20세기 현대미술 정점에 오른 그의 출발은 ‘도망친 소녀’가 보여주듯 불안하고 미미했다.

무엇이 부르주아를 불안하게 만들었고, 동시에 위대한 작가로 키웠을까. 호암미술관 전시는 엄청난 물량 공세로 그 질문에 충분히 답한다. 국내 미술관 최대 규모 전시답게 20대 초기 회화부터 구십이 넘어 제작한 ‘커플’ 조각까지 70년 작업 여정을 펼쳤다. 루이즈 부르주아 이스턴재단이 기획한 아시아 순회전의 일환으로, 리움 소장품까지 합세해 총 106점이 나왔다.

연대기 순으로 전시되지 않아 이해가 쉽지는 않다. 오히려 생애에 대해 먼저 알고 거기서 연유한 작품 세계를 상상하며 감상하는 방식이 낫다. 82년 모마 회고전 당시 미술전문지 아트포럼 인터뷰에서 부르주아도 “나의 모든 조각은 자전적이다”고 고백했으니 말이다.

부르주아는 태피스트리 복원 작업을 하는 어머니, 그걸 판매하는 갤러리를 운영하는 아버지 밑에서 자랐다. 대학에서 수학을 전공했지만 21세 때 어머니가 죽으면서 미술로 전공을 바꿨다. 입체파 화가로 잘 알려진 스승 페르낭 레제가 “너는 회화보다는 조각이야”라며 조각의 세계에 눈을 뜨게 했다.

어린 시절의 트라우마가 작업을 관통한다. 자신을 가르친 입주 영어교사와 불륜을 저지른 아버지에 대한 분노, 이에 무기력했던 병약한 어머니에 대한 애증, 그런 어머니로부터 버려질 거라는 불안 등이 그의 내면을 지배했다.

성장 과정에서 잉태된 페미니즘이야말로 그를 미술계 중심으로 호출한 예술적 자산이다. 부르주아가 위대한 것은 형식에서 미술사의 전통을 전복했고, 내용에서 가부장적 이데올로기를 전복해서다.

‘아버지의 파괴’(보존용 폴리우레탄 수지, 목재, 천, 붉은 조명, 237.8×362.3×248.6㎝, 1974-2017). 호암미술관 제공

이를 극명히 보여주는 작품이 ‘아버지의 파괴’(1974)다. “어린 시절 식탁에서 아버지의 자기 과시에 지친 가족들이 그를 끌어내려 사지를 찢고 먹어치우는 상상을 했다”고 실토한 그였다. 아버지를 고기 절단하듯 붉은 조명의 정육점 분위기 설치 작업으로 재현한 용감함이라니. 이미 남근 숭배 사상에 반기를 들며 남근 모양 여성 조각(1968)을 만들 정도로 그는 과감했다. ‘아버지의 파괴’는 90년대 ‘밀실’ 연작의 설치 작업으로 확대됐는데 부모 방을 엿보는 아이의 불안한 심리를 담아낸 ‘붉은 방’(1994)에서도 가족사가 읽힌다.

그는 전통적인 조각 개념을 부수고 확장했다. 아버지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나무, 브론즈, 대리석을 사용한 ‘딱딱한 조각’뿐 아니라 천에 솜을 넣어 꿰맨 조각 등 어머니의 세계를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조각을 볼 수 있다, 실패(실을 감아둔 도구)를 사용한 설치, 자수 회화 등 실과 천을 사용한 작업이 많다. 돼지처럼 가슴이 여러 개인 기이한 인간 조각에는 모성에 대한 갈구가 있다.

모성에 대한 갈구의 정점은 90년대 탄생한 거미 조각 ‘마망’이다. 거미줄을 치는 거미는 태피스트리 복원가 어머니에 대한 헌사다. 전시장에서는 ‘어머니는 나를 버렸어!’라고 외치는 영상 앞에 거미 조각이 설치돼 심금을 울린다.

‘커플’(알루미늄, 365.1×200×109.9㎝, 2003). 호암미술관 제공

‘커플’ 연작은 가부장 사회에 새로운 길을 제시한다. 커플은 73년 세상을 떠난 남편일 수 있지만 오히려 작업 조수이자 영혼의 단짝 제리 고로보이와의 관계를 상기시킨다. 알루미늄 커플 조각은 공중에 매달려 나선형으로 서로를 중심으로 끊임없이 회전하며 하나로 융합하려는 모습을 보여준다.

커플이라는 주제는 서울 종로구 삼청동 국제갤러리의 브루주아 개인전 ‘라킹 투 인피니티’에서 보다 밀도 있게 감상할 수 있다. 생애 마지막 20년에 걸쳐 작업한 조각 및 드로잉에 집중하기 때문이다. ‘10시는 네가 내게 오는 시간’(2006)등 고로보이와의 관계를 형상화한 드로잉이 다양하게 나왔다. 알루미늄 커플 조각도 있는데, 호암미술관에서 하나로 융합하려던 커플이 마침내 자신들을 휘감은 나선 안에서 하나가 된 작품을 볼 수 있어 흥미롭다. 국제갤러리 10월 26일까지, 호암미술관 내년 1월 6일까지.

손영옥 미술전문기자 yosoh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