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예배 365-10월 16일]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옵소서

입력 2025-10-16 03:07

찬송 : ‘나의 죄를 정케 하사’ 320장(통350)

신앙고백 : 사도신경

본문 : 누가복음 10장 25~37절


말씀 : 한 율법교사가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25절) 율법교사에게 예수님은 되물으십니다. “율법에 무엇이라 기록되었으며 네가 어떻게 읽느냐.”(26절) 그러자 율법교사가 정답을 대답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라.”(27절) 예수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를 행하라 그러면 살리라.”

하지만 율법교사는 또 묻습니다. “그러면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그는 사랑의 대상을 구분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그때 예수님이 들려주신 이야기가 바로 ‘선한 사마리아인’ 비유입니다.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 거의 죽게 됐습니다. 제사장과 레위인은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들의 예배는 성전 제단에 머물렀을 뿐 길 위에서는 멈췄습니다. 예배는 하나님께 드려진 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사랑이 흘러나오는 자리가 돼야 합니다.

그때 천대받던 사마리아 사람이 나타납니다. 사마리아 사람은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 말 한 마디가 복음의 중심입니다. 그는 가까이 다가가 상처에 기름과 포도주를 붓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려가 돌봤습니다.

그리고 주막 주인에게 돈을 맡기며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 갚으리라”고 합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사랑의 모습입니다. 이 비유의 핵심은 단순히 착하게 살자가 아닙니다. 우리가 강도 만나 쓰러져 있을 때 예수님께서 우리를 불쌍히 여기시고 자신의 피로 상처를 싸매시며 교회라는 주막에 우리를 맡기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말씀하십니다.

“가서 너도 이처럼 하라.” 율법교사는 끝까지 사마리아인이라는 말을 하지 못했습니다. “자비를 베푼 자입니다”라고만 답했습니다. 그들이 멸시하는 사마리아인이 자비를 베풀었다는 걸 인정하기 싫었던 겁니다. 우리 시야는 너무 좁습니다. 사람을 나누고 조건을 따지며 판단하며 삽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틀을 깨시며 말씀하십니다. “사랑은 경계가 아니라 실천이다.”

여러분은 시야가 넓은 사람입니까, 좁은 사람입니까. 사람이 자기를 객관화하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 신앙도 마찬가지입니다. 율법교사처럼 아는 데 멈추지 말고 사마리아인처럼 보고 불쌍히 여기며 행동할 줄 아는 믿음이 돼야 합니다.

단지 착한 일을 하라는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눈으로 세상을 보라는 초대입니다. 사랑은 선택이 아니라 실천이며 신앙은 예배당 안에서가 아니라 길 위에서 완성됩니다.

기도 : 주님, 우리의 시야를 넓혀 주옵소서. 율법교사처럼 머리로만 믿지 않게 하시고 형식으로만 예배하지 않게 하소서. 사마리아인처럼 불쌍히 여기며 다가가는 사랑을 하게 하옵소서. 예배와 삶이 하나 돼 우리 눈이 주님의 눈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주기도문

박요한 서울 송정교회 목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