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며 사랑하며] 희망을 쓰기까지

입력 2025-10-15 00:33

세상이 또다시 같은 방향으로 흘러가려는 모양이다. 편리하지만 편안하지는 않게. 2026년 트렌드 키워드가 ‘불안’이라는 뉴스를 봤다. 우리 사회의 보편정서가 불안감과 피로감이라는 사실을 대대적으로 공표한 기분이다. 애석하게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이름 모를 불행과 고난 앞에 내미는 희망이 어떨 땐 너무 섣부르고 오만한 것 같아 낙관과 긍정의 글을 쓰기가 망설여진다. 내가 품은 희망이 무용한 위로나 얄팍한 거짓말처럼 초라하고 졸렬하게 느껴지는 순간에는 나아질 거라는 옅은 기대조차 담기 어렵다.

하지만 백번 천번 생각해도 나는 희망의 편에 서 있다. 깨지고 상처 입고 실망해도 미움과 불평 섞인 악다구니를 쓰고 싶지 않다. 비관 대신 낙관의 언어로 세상을 대하고 삶을 마주하고 싶다. 어쩌면 그건 내 고유의 의지가 아니라 인류의 가장 오래된 생존법일지도 모르겠다. 채집과 유목에서 시작한 떠돌이 집단이 문명을 이뤄 번성할 수 있었던 이유는 온화한 기후와 양질의 토양이 ‘거기 있음’을 알아서가 아니라, ‘어딘가에’ 반드시 있을 거라는 기대와 희망으로 나아간 덕분이었으니까. 시대가 불안의 물결로 덮쳐온다 해도, 비관 없이 세상을 살아가는 태도를 잃지 않으려 한다. 그것이 구슬픈 노래일지언정 희망만은 포기하지 않겠다. 설령 희망이 절망을 몰아내는 힘이 아니라 허공에 흩날리는 먼지 같은 것이라 해도, 또렷한 시선으로 희망을 좇으면서 가장 약한 곳에 자리한 아름다움을 벗 삼아 다정한 마음을 키울 것이다. 당장의 어려움을 이겨낼 만큼의 울림이 없더라도, 낙관과 긍정의 말을 찾아 오늘에 새겨넣는다. ‘괜찮다’는, ‘이대로도 좋아’라는, ‘할 수 있어’라는. 작은 희망이 커다란 내일을 보장해주진 않지만, 잠시나마 기운을 차리고 무너지지 않을 시간을 마련해본다. 나와 세상을 향해 띄우는 이 작은 의례가 현실을 외면하는 행위가 아니라 오늘을 살아가는 힘이 되기를.

함혜주 이리히 스튜디오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