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로야구 포스트시즌이 한창이다. 선수들에게 한국시리즈는 1년을 결산하는 무대이자 한 시즌의 마지막 목표다. 정규 시즌의 피와 땀, 수많은 부상과 부진을 지나 단 몇 경기로 자신의 실력과 가치를 증명해야 한다. 그 간절함과 긴장감 속에서 선수들은 한 경기, 한 공, 한 타석마다 모든 힘을 쏟는다.
특히 9회 말의 역전 홈런이나 결승타는 승리한 팀에 짜릿한 감동과 환희를 안겨준다. 공이 담장을 넘어가는 순간 터져 나오는 함성, 서로 어깨를 부둥켜안은 선수들의 눈물과 웃음은 승리라는 이름의 짜릿함을 보여준다. 그러나 누군가가 이기면 누군가는 반드시 진다. 카메라의 초점이 환호하는 선수들에게서 옮겨가면, 그 뒤편에는 고개를 숙인 투수와 망연자실한 패자의 얼굴이 있다. 분노한 팬들은 거친 비난과 욕설을 퍼붓고, 선수의 이름 앞에 패자라는 낙인을 찍는다.
얼마 전 미국 프로야구 포스트시즌에서도 비슷한 장면이 있었다. 연장 11회 말, 한 투수가 어이없는 송구 실책을 저지르며 팀이 패하고 말았다. 시리즈를 끝내는 치명적인 실수였다. 그때 어깨를 떨군 투수에게 팀 동료들과 코치진이 마운드로 다가와 실수를 저지른 투수의 어깨를 두드리고 끌어안았다. “우리는 함께 이기고 함께 진다.” 동료들의 위로에는 비난보다 더 큰 아름다움과 품격이 있었다. 시리즈의 명운이 걸린 끝내기 실책 앞에서 팀 선수들은 동료애를 선택했다.
이 장면은 승자에게만 스포트라이트를 비추는 세상에 생각을 던져준다. 인간 사회의 경쟁은 필연적으로 승자와 패자를 갈라놓는다. 누군가 기뻐서 환호할 때, 누군가는 패배의 눈물을 흘려야 한다. 누군가 합격하면 누군가는 탈락하고, 누군가 올라가면 누군가는 떨어진다. 세상은 승패로 실력을 구분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기준은 때로는 불완전하고 약하다.
실력이 더 뛰어나다고 이기는 것도 아니고 열심히 노력한다고 해서 잘 풀리는 것도 아니다. 실력이 있어도 실패하고 최선을 다했어도 넘어지는 경우가 있다. 종이 한 장 차이의 실력으로 승패가 갈리고 사소한 선택과 운이 승패를 결정짓기도 하는 건 비단 야구만의 일이 아니다. 사업에 실패한 사람도, 시험에 떨어진 사람도, 경기에 진 선수도 단지 그 순간 운이 따르지 않았을 뿐이다. 그들에게 노력이 부족했다고 쉽게 말할 수는 없다.
패배한 선수도, 시험에 떨어진 사람도 모두 자신의 힘을 쏟아 최선을 다했다. 마지막 공 하나까지 힘껏 던졌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았다. 패배한 사람들도 이미 싸움을 완주한 이들이다. 오늘의 패배자는 어제의 영웅이었을 수도 있고, 내일은 승리자가 될 수도 있다. 패배의 짐을 짊어진 사람에게 보내야 할 것은 비난이 아니라 따뜻한 위로와 격려다.
아니, 패배야말로 인간을 성장하게 하는 내밀한 힘이다. 승자가 환호 속에 현재를 누릴 때 패자는 고통 속에서 내일을 준비한다. 패배의 순간 인간은 비로소 자신의 부족함을 직시하고 더 깊은 성찰과 성숙으로 나아간다. 넘어져 본 자만이 다시 일어서는 법을 알고, 고통을 견딘 자만이 인내의 진정한 가치를 안다. 인간의 삶에는 승리보다 더 많은 패배의 기록이 있다. 그러나 그 패배의 시간이야말로 삶을 더욱 단단하게 단련시키는 담금질이자 새로운 시작을 만드는 디딤돌이다.
승리한 선수들과 함께 기뻐하는 장면도 보기에 좋지만 패배한 선수에게 박수를 보내고 따뜻한 위로를 건네는 모습은 더 깊은 울림을 준다. 그것이야말로 치열한 경쟁 속에서도 인간적인 연대를 잃지 않는, 진정한 팬의 품격일 것이다. 스포츠의 가치는 승리의 영광에만 있지 않다. 패자의 슬픔을 함께 나누고 다시 일어설 용기를 전하는 인간애와 동지애 속에 진정한 스포츠맨십이 깃들어 있다.
박수밀 고전학자·한양대 연구교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