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섬情談] 혐오를 혐오한다

입력 2025-10-15 00:35

갈수록 격화되는 혐중 시위
특정 인종 비하와 다를 게 없어
K컬처의 시대에 어울리는가

100여년 전 일본에 규모 8.2 대지진이 발생했다. 화재와 붕괴로 10만명이 사망하거나 실종됐다. 1923년 관동대지진이다. 카오스였다. 희생양이 필요했다. “조선인이 방화·폭동을 일으키고 우물에 독을 풀었다”라는 유언비어가 퍼졌다. 자경단이 죄 없는 조선인을 무자비로 학살했다. 6000명 이상 희생됐다고 추정한다. 특정 국가나 인종에 관해 공포심 조장하고 유언비어 퍼뜨리고, 이게 혐오와 폭력, 학살로 이어진 대표 사례다. 나치의 유대인 학살 또한 그러했다.

IT 스타트업에 다닌다. 정확하게는 플랫폼 만드는 회사 마케팅본부장이다. 우리 플랫폼 핵심 타깃은 2040 중국 여성이다. 이들이 우리 플랫폼을 통해 한국 땅을 밟게 만드는 게 목표다. 개발본부에서 지난 수개월간 밤낮없이 프로그램을 만들었다. 그사이 우리 부서는 어떻게 하면 2040 중국 여성에게 플랫폼을 알릴까 고민했다. 중국 파트너사와 수없이 미팅했다. 시장 분석하고 전략 짜는 사이 여름이 지났다. 모두 고생한 덕에 그럴싸한 플랫폼이 완성 직전이다. 이달 말 오픈 예정이다. 모든 게 순조롭다고 생각했다. 얼마 전까지는 말이다.

낌새가 보인 건 이달 들어서다. 명동을 중심으로 혐중 시위가 스멀스멀 퍼졌다. 날이 갈수록 격화됐다. 정부까지 나서서 자제 메시지를 냈지만 좀처럼 사그라지지 않았다. 급기야 중국 단체관광객 무비자 입국을 앞둔 지난달 말, 정치인까지 말을 보탰다. 핵심은 “중국인의 범죄 행위와 전염병 확산에 유의하라”는 거였다. 위험하니 야외 화장실 갈 때 삼삼오오 모여 가라는 말까지 붙였다.

“조선인이 우물에 독 풀었다”라는 말만큼이나 황당한 얘기다. 굳이 팩트체크 하자면 2023년 경찰청 통계자료 기준 내국인 범죄율이 2.36%, 국내 체류 중국인 범죄율이 1.65%다. 또 질병관리청 자료를 분석한 학술 논문에서 2020년부터 2023년 5월까지 해외 유입(출발국) 코로나19 확진자 비중을 정리했다. 1위 미국(16.5%), 2위 베트남(11.9%)이다. 중국은 5위로 4.1%에 불과했다. 어디 편들자는 게 아니다. 사실만 보자는 얘기다.

정치인 발언은 시위대에게 정당성을 줬다. 이달 들어 서울 도심 전체로 시위가 확산했다. 중국인에게 고성과 욕설, 위협했다는 보도가 쏟아졌다. 돌아가는 흐름이 관동대지진 때와 닮았다고 하면 과하다고 하려나.

급하게 ‘24시 응급 콜센터’를 기획했다. 우리 플랫폼을 통해 한국 땅을 밟는 누구든 버튼 하나만 누르면 보호받을 수 있다는 안도감을 주고 싶었다. 추가적인 인력과 비용, 프로그램 개발에 따른 시간이 필요했다. 그럼에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실효성을 떠나 당위 문제라고 판단했다.

살며 가슴에 새긴 문장이 하나 있다. “스스로 획득하거나 유발하지 않은 일에 관해 칭찬하거나 비난하지 말라”는 것이다. 쉽게 말해 백인이거나 흑인이라는 이유로, 여자거나 남자라는 이유로 차별하지 말잔 얘기다. 왜? 나의 노력과 무관하게 태어나면서부터 정해진 거니까. ‘24시 응급 콜센터’는 그렇기에 필요하다고 판단했다.

‘케데헌’ OST ‘골든’이 미국 빌보드 핫 100에서 8주 연속 1위 했다. 그 전에 ‘오징어 게임’은 비영어권 시리즈 역대 1위를 기록했고, ‘기생충’은 아카데미 4관왕을 차지했다. K컬처가 전 세계를 강타한다. 대한민국의 보편타당한 도덕성이 그 원동력이라고 나는 믿어 의심치 않는다. 지금의 혐중 시위는 대한민국의 수준 높은 도덕성에 찬물을 끼얹는다.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가 코앞이다. 국제사회가 대한민국을 주목한다. 우리가 혐오할 수 있는 건 오직 하나, 누군가를 혐오하는 그 ‘마음’뿐이다. 나는 혐오를 혐오한다.

개발본부장과 미팅하러 갈 시간이다. 응급 버튼 하나만 추가해 달라는 게 ‘문돌이’인 나의 입장이다. ‘공돌이’인 개발본부장은 “가능하죠. 가능하긴 한데…”라며 한숨부터 쉰다. 미팅이 쉽지 않을 것 같다.

송주홍 작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