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13일 대법원 국정감사에서 “어떤 재판을 했다는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면 헌법과 양심에 따라 재판을 하는 것이 위축되고 외부 눈치를 보는 결과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의 국감 증인 출석 여부를 두고 여당의 압박이 계속되는 상황에서 나온 작심 발언이다. 여권이 제기하는 ‘조희대-한덕수 비밀회동설’에 대해서는 “사적 만남은 일절 없었다”고 일축했다.
더불어민주당은 대법원장이 국감 시작 때 인사말을 한 뒤 이석하는 기존의 관례를 깨고 오전 내내 조 대법원장을 국감장에 앉혀둔 채 공세를 퍼부었다. 국민의힘은 이를 ‘대법원장 감금’이라고 비판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대법원 국감에 출석해 “대법원장 취임 이래 헌법과 법률에 따라 직무를 수행해 왔으며 정의와 양심에서 벗어난 적이 없음을 분명히 말씀드린다”며 “그럼에도 사법부를 둘러싼 작금의 여러 상황에 깊은 책임감과 함께 무겁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고 밝혔다.
그는 “저에 대한 증인 출석 요구는 현재 계속 중인 재판에 대한 합의 과정의 해명을 요구하는 내용을 담고 있어 국정감사법과 헌법, 법원조직법 등의 규정과 취지에 맞지 않는다는 우려가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삼권분립 체제를 가진 법치국가에서 재판 사항에 대해 법관을 감사나 청문의 대상으로 삼아 증언대에 세운 예를 찾아보기 어렵다”고 강조했다.
조 대법원장의 이번 발언은 이재명 대통령 공직선거법 파기환송 판결과 윤석열 전 대통령 구속취소 결정 등을 이유로 현직 법관들을 국감 증언대에 세우려는 민주당의 시도를 정면 비판한 것으로 풀이된다.
추미애 법사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의 입장표명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대법원장 이석 없이 질의를 진행했다. 민주당은 이 대통령 공선법 파기환송 판결의 이례적인 속도 등을 지적했다. 반면 국민의힘은 추 위원장의 국감 진행 방식 등에 반발했다. 오전 10시쯤 출석한 조 대법원장은 약 1시간40분간 자리를 지키다 증인 선서를 위해 휴정한 오전 11시40분에야 국감장을 떠났다.
조 대법원장은 오후 11시40분쯤 모든 질의가 끝난 후 마무리 발언을 하기 위해 국감장에 돌아왔다. 그는 한덕수 전 국무총리 등을 만나 이 대통령 판결과 관련한 논의를 했다는 의혹에 대해 “일절 사적인 만남을 가지거나 해당 사건에 대한 대화나 언급을 한 적이 없다는 점을 다시 한번 분명히 말씀드린다”고 말했다.
조 대법원장은 이 대통령 판결의 심리 과정에 관해선 “개인적으로는 이와 관련한 불신을 해소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하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면서도 ‘법관은 판결로 말한다’는 법언을 언급하며 “대법원장이라고 해도 전원합의체 구성원 1인에 불과한 이상 판결 이외의 방법으로 의견을 드러낼 수 없다”고 덧붙였다.
조 대법원장의 마무리 발언이 끝난 후 그의 발언을 두고 여야 의원들은 다시 공방을 벌였다. 발언권을 가진 추 위원장이 마지막으로 이 대통령 사건 관련 기록을 언제 처음 봤는지 등을 물었으나 조 대법원장은 답변하지 않았다.
양한주 기자 1week@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