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어 연극으로 유럽 사로잡은 구자하

입력 2025-10-14 01:05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의 협력예술가인 구자하가 13일 서울 종로구 예술가의집에서 포스터를 배경으로 포즈를 취하고 있다. 서울국제공연예술제 제공

한국 연극은 흔히 언어 장벽 때문에 해외 진출이 어렵다고 여겨진다. 유럽을 기반으로 한국어로 연극을 만드는 구자하는 이 같은 통념을 깨뜨리는 인물이다. 그가 선보인 ‘롤링 앤 롤링’ ‘쿠쿠’ ‘한국 연극의 역사’는 지금까지 27개국에서 300회 넘게 공연됐다.

올해 서울국제공연예술제(SPAF)에서 신작 ‘하리보김치’(16~19일 대학로극장 쿼드)를 선보이기 위해 내한한 구자하는 13일 서울 대학로 예술가의집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요즘 국제 공연 축제는 자막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 언어로 인한 어려움을 느끼지 못했다”며 “매끄럽지 않은 영어 발음 자체가 내 정체성과 예술적 맥락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어 “연극은 정치적 예술이라는 게 내 믿음”이라며 “작품의 메시지를 통해 관객과 연대하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전통적인 연극의 틀에서 벗어나 음악, 영상, 텍스트, 오브제 등 다양한 매체를 결합한 연극을 선보인다. 직접 퍼포머로도 나선다. 그를 지칭하는 용어는 ‘씨어터 메이커’(연극 만드는 사람)다. 그는 “내 작품은 동시대 공연예술 또는 아방가르드 연극으로 불리는 영역에 속한다”면서 “해외에선 ‘하이브리드 연극’으로도 부른다”고 설명했다.

그는 인디음악계에서 전자음악 작곡가 겸 DJ로 활동하다 한국예술종합학교 연극원에서 이론을 전공했다. “대학 시절부터 국내 공연계 주류의 전통적인 연극 작업에 불편함을 느꼈다”는 그는 네덜란드로 유학을 떠나 암스테르담 예술대학에서 현대연극 연출 석사 학위를 받았다.

2014년 대학원 작업의 일환으로 발표한 데뷔작 ‘롤링 앤 롤링’은 한국 사회의 영어 집착 세태 등을 풍자한 작품으로, 발표 직후 유럽 공연 관계자들의 주목을 받았다. 이를 계기로 벨기에 겐트의 공연예술기관 ‘캄포(CAMPO)’의 레지던트 아티스트가 됐다.

이어 2017년 압력밥솥을 로봇 퍼포머로 등장시킨 ‘쿠쿠’와 2020년 서양 연극의 수용과 모방을 비판적으로 조명한 ‘한국 연극의 역사’를 차례로 선보였다. 작품마다 15개 넘는 해외 공연 축제가 공동프로듀서로 참여했다.

‘하마티아 3부작’으로 불리는 작품은 그의 기억과 경험에서 출발해 동아시아의 정치적 지형과 식민지 역사, 문화적 정체성을 다룬다. 이미 해외에서 호평받은 신작 ‘하리보김치’ 역시 김치와 젤리 등 음식을 매개로 해외 거주 한국인의 정체성과 디아스포라를 탐구한다. 그는 “관객과의 관계를 중시하다보니 내 이야기부터 시작하는 게 자연스럽다. 한국 이야기를 담고 있어도 해외 관객들은 한국만이 아니라 자신들의 이야기로 해석하고 이해한다”고 설명했다.

그의 차기작은 2027년 초연 예정인 ‘본투비 K투비 팝’이다. 세계 대중음악계의 주류로 올라선 K팝의 이면을 다룬다. 그는 “이 작품부터는 대규모 작품이 될 것”이라면서 “규모와 상관없이 제 작업은 동시대성을 담은 연극을 만드는 것이다. 우리 시대를 비추는 거울 같은 작품이야말로 연극의 역할이라고 생각한다”고 피력했다.

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