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로 매년 가장 뜨거운 여름이 경신되고, 폭우와 가뭄은 더 자주, 더 강하게 발생하고 있다. 지난 1월 미국 로스앤젤레스, 3월 경북 지역을 삼킨 초대형 산불 역시 이례적으로 건조한 대기가 피해를 키웠다는 분석이 많다. 전 인류의 생존이 달린 숙제가 된 기후위기 문제에서, 인공지능(AI)은 긍정적, 부정적 역할을 동시에 해내는 양날의 검이 됐다. AI 발전에 필연적으로 동반되는 막대한 전력 소모와 데이터센터 설립은 지구를 더욱 뜨겁게 달군다. 동시에 데이터 분석과 추론에 특화된 AI로 기후위기에 맞설 수 있다는 시각도 존재한다.
AI는 ‘전기 먹는 하마’라고 불릴 만큼 많은 전력을 사용한다. 고성능 프로세서를 탑재한 서버를 쉴 틈 없이 가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복잡한 연산을 수행할 때는 물론이고, “고맙습니다” “부탁합니다”와 같은 간단한 인사말에도 꼬박꼬박 전력이 소모된다. 미국 로드아일랜드대학교 AI연구소에 따르면 GPT-5 모델은 중간 길이의 답변 하나를 생성할 때 평균 18와트시(Wh)의 전력을 소모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18Wh는 백열전구 하나를 18분 동안 켜둘 수 있는 전력량이다. 또 AI를 많이 사용할수록 데이터 저장과 연산 처리 등을 담당하는 데이터센터에서 열이 발생한다. 과열을 제때 잡지 못하면 성능 저하나 수명 단축과 같은 치명적인 피해가 발생한다. 이 때문에 열을 식히는 작업이 필수적인데, 데이터센터가 사용하는 전력의 40%가 냉각에 활용될 만큼 큰 비중을 차지한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내년 전 세계 AI와 데이터센터, 가상화폐 관련 산업의 전력 소비량이 2022년보다 배 이상 늘어난 1000테라와트시(TWh, 1조 와트시를 의미하는 에너지 단위)에 달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 중 데이터센터가 쓰는 전력은 2022년 2.1% 수준에서 2026년 4.4%, 2030년 10.2%까지 증가할 전망이다. 아울러 IEA는 2030년이면 데이터센터에서만 소비하는 전력량이 약 945TWh를 기록할 것으로 봤다. 이는 일본의 연간 전체 전력 소비량에 맞먹는 수준이다.
AI의 발전은 온실가스 배출에도 영향을 끼친다. 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이 늘고는 있지만, 아직까지 전 세계 전력의 절반 이상은 화석연료로 만들어지고 있다. 화석연료를 태울 때 발생하는 온실가스는 지구 온도를 올리는 주범 중 하나다. 빅테크 기업이 공개한 자료를 보면, AI 개발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시점과 맞물려 온실가스 배출량이 늘어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구글은 지난해 발표한 연례 환경보고서에서 2023년 기준 배출한 온실가스가 1430만tCO2e(이산화탄소환산톤)에 달한다고 밝혔다. 이는 2022년 대비 13%, 2019년 대비 48% 증가한 수치다. 네이버가 올해 내놓은 ESG 통합보고서에도 온실가스 배출량이 2021년 7만8884tCO2e에서 2022년 8만6991tCO2e으로 늘었고, 지난해에는 12만6053tCO2e으로 증가했다는 내용이 담겼다.
다른 한편에서는 이렇게 발전한 AI로 기후 재난을 극복하거나, 더 나아가 기후 위기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는 길을 찾을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실제 기업들은 AI를 활용해 기후 변화에 대응하고 있다. 구글은 2017년부터 AI 기반 홍수 예보 시스템인 ‘플러드 허브’의 개발을 시작해 현재 100여개 국에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해당 시스템은 머신러닝으로 홍수 데이터를 학습한 AI가 기상 상황 및 강의 수위를 예상해 홍수 경보를 발령하는 방식이다. 구글 측은 “홍수 조기 경보 시스템을 통해 사망 사고는 43%, 경제적 피해는 35~50%를 예방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AI가 사용한 전력을 AI를 통해 아낀다는 전략도 있다. 미국 펜실베이니아주 피츠버그 당국은 시내에 AI 신호체계를 도입해 교통 혼잡을 해소했을 뿐아니라, 자동차 연료 소모를 약 20%가량 감소하는 효과를 냈다. 실시간으로 신호를 조절해 최적의 교통 흐름을 만들어낸 것이다. 이와 함께 전력 사용 패턴을 분석해 이용효율을 극대화하는 ‘스마트 그리드’와 현실 세계 대신 가상 공간에 물리적 대상을 구현해 비용을 절감하는 ‘디지털 트윈’ 기술은 AI를 만나 날개를 달 것으로 기대를 받고 있다.
인간의 지적 능력을 뛰어넘는 ‘초인공지능’(ASI)으로 기술 혁신 속도가 대폭 빨라지고, 결국 기후 문제를 풀어낸다는 시나리오도 마냥 허황된 꿈은 아니다. 이미 생물학에서는 AI 기반 단백질 구조 예측 도구인 ‘알파폴드’로 50년 난제를 해결해 지난해 노벨 화학상까지 수상하는 성과가 나왔다. 신소재 개발과 에너지 저장, 탄소 포집 기술, 대기 정화 등 다양한 분야에서 AI는 실험의 속도를 수십 배 이상 단축시키고 성공 가능성이 높은 조합을 빠르게 찾아내는 등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지가 이어진다면, AI는 결국 기후위기의 해결사가 될 가능성이 크다고 본다. 윤순진 서울대 환경대학원 교수는 “AI를 사용하게 되면 전력 소비가 느는 게 사실이지만, 재생 에너지 전환 기조가 강해지는 상황에서 과거와 동일한 전력 시스템을 미래에까지 전제할 필요는 없다”고 짚었다. 시대적 흐름이 된 AI 대전환을 부정할 수 없다면, 방법을 함께 찾아내야 한다고도 강조했다. 윤 교수는 “세계적 추이를 보면 빅테크 기업의 엔지니어들도 궁극적으로는 더 적은 에너지를 더 효율적으로 활용하는 AI를 고민하는 것을 알 수 있다”며 “AI가 일정 수준 이상 고도화되면 사용하는 에너지의 양을 절약하는 에너지가 상회하는 긍정적 순환으로 자리잡을 수 있다”고 말했다.
박선영 기자 pomm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