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슬라 보급형 출시에 현대차는 할인… 美 전기차 ‘치킨게임’ 점화

입력 2025-10-14 00:42

미국의 25% 고율 관세로 가격을 올려도 모자랄 판에 현대자동차·기아가 미국서 일부 전기차를 최대 9800달러까지 낮춰서 판매하고 있다. 이 같은 결정의 배경엔 복잡한 셈법이 자리하지만 업계에선 그중 하나로 테슬라의 보급형 전기차 출시를 꼽는다. 미국 전기차 세액공제 혜택 종료로 점유율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치킨게임’이 시작됐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테슬라는 최근 미국에서 전기 세단 모델3와 전기 스포츠유틸리티차(SUV) 모델Y의 스탠더드 트림을 출시했다. 기존 트림의 성능을 낮추고 가격을 내린 보급형 모델이다.

모델3 스탠더드의 판매가는 3만6990달러(약 5300만원)로 기존보다 5500달러 저렴하다. 모델Y 스탠더드는 3만9990달러(약 5700만원)로 기존보다 5000달러 싸다. 대신 생산 원가를 확 낮췄다. 기존 대비 10% 작은 배터리팩을 탑재했다. 1회 충전으로 주행 가능한 최대 거리는 575㎞(EPA 기준)에서 516㎞로 줄었다. 시트는 가죽에서 직물로 바꾸고 통풍 기능을 뺐다. 기본 장착 휠 크기를 19인치에서 18인치로 줄였다. 운전대(스티어링 휠)와 사이드미러 조절도 수동으로 해야 한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행정부가 전기차에 제공하던 세액공제 혜택을 지난달 30일 폐지하면서 수요 감소가 불가피해진 데 따른 조치로 풀이된다. 블룸버그는 미국 전기차 판매량이 올해 3분기 49만9000대에서 4분기 33만1500대로 33% 급감할 것으로 전망했다. 짐 팔리 포드 최고경영자(CEO)는 “미국 내 전기차 판매 비중이 현재 10~12% 수준에서 4~5% 정도로 감소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테슬라의 미국 전기차 시장 점유율이 하락하고 있다는 점도 영향을 미쳤다. 테슬라는 지난 8월 점유율 38%를 기록해 2017년 10월 이후 처음으로 40% 밑으로 떨어졌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미국 시장에서 점유율이 축소한 데다 세액공제 혜택 폐지로 향후 불확실성마저 커지자 테슬라가 가격 경쟁력을 높이는 카드로 돌파구를 모색하는 것”이라고 분석했다.

테슬라의 3만 달러대 전기차 출시는 현대차·기아에도 적잖이 신경 쓰이는 부분이다. 현대차 아이오닉5의 미국 판매가는 4만2600달러다. 기존 모델Y보다 싸지만 스탠더드 트림보다는 비싸다. 테슬라보다 저렴하다는 장점이 사라진 셈이다. 현대차는 2026년형 아이오닉5 가격을 트림에 따라 7600~9800달러 할인하기로 했다. 수익성이 떨어지더라도 미국 전기차 시장에서 점유율을 유지하는 게 중요하다는 판단에서다. 현대차·기아는 미국에 최대한 빨리 보급형 전기차를 출시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졌다.

완성차업계 한 관계자는 “전기차 세제 혜택이 사라진 상황에서 기존 모델의 옵션을 줄여 가격을 낮추는 방식으로 ‘치킨게임’이 시작됐다”며 “전기차 가격 경쟁이 심화하는 상황에서 현대차·기아도 다른 업체의 가격 동향을 예의주시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용상 기자 sotong203@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