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법원장께서는 인사말씀과 함께 여야 약간 명의 위원으로부터 질의응답을 통해 국민적 의혹을 말끔히 해소해 주실 것을 정중히 부탁드린다.”
추미애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은 13일 대법원 대상 국정감사를 조희대 대법원장에 대한 선전포고로 시작했다. 관례에 따라 인사말만 한 뒤 국감장을 떠나려던 조 대법원장의 이석도 허락하지 않았다. 증인 선서도 미룬 채 곧바로 “민주당 3명, 국민의힘 3명, 비교섭단체 1명이 질의를 이어가겠다”고 선언했다. 이에 반발하는 야당 의원의 고성이 터져나오며 국감장은 순식간에 난장판이 됐다.
추 위원장은 “누구보다 법을 존중해야 할 대법원장님께서 관례라는 말을 책임을 회피할 방패로 삼지 않기를 바란다”며 “개인적으로도 그간 의혹으로 오해받는 사항이 있다면 해소하는 기회로 삼으시기 바란다”고 말했다. 여당 의원의 의혹 제기에 답하라는 취지였다.
야당은 조 대법원장에 대한 질의가 부당하다고 반발했다. 나경원 국민의힘 의원은 “대법원장이 모두발언만 하고 불출석하는 것, 국회가 증인으로 채택하지 않는 것은 국회의 오랜 관례이자 삼권분립 원칙에 대한 존중”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추 위원장의 논리대로라면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장도 상임위 국감장에 나와야 한다”며 “헌정사상 전대미문의 기괴한 국감을 중단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그럼에도 여당 의원들은 조 대법원장을 향해 윽박지르듯 질의를 이어갔다. 박균택 민주당 의원은 “한덕수 총리를 만난 적이 있느냐 없느냐”라며 이른바 ‘회동설’에 대한 입장을 요구했다. 또 “제1야당 후보의 공직선거법 위반 사건을 군사작전 같은 속도로 처리했는데 지금도 그 재판이 옳았다고 생각하느냐”고 따졌다. 서영교 의원도 “윤석열과 만난 적 있느냐. 한덕수와 만난 적 있느냐”며 목소리를 높였다.
친여 성향의 무소속 최혁진 의원은 “조희대를 윤석열 전 대통령에게 추천한 사람이 김건희의 계부 김충식”이라며 “김충식은 일본 태생이고, 일본 황실과 깊은 인연이 있고 일본 통일교와도 밀접한 인물로 알려졌다. 사실이면 김충식을 통해 일본 입맛에 맞는 인물을 대법원장으로 추천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어떤 근거도 제시하지 않은 채 ‘밑도 끝도 없이’ 음모론만 제기한 것이다. 조 대법원장을 도요토미 히데요시에 빗대 ‘조요토미 희대요시’라고 적은 문구와 합성 사진을 들어 보이기도 했다. “진짜 수준이 낮다. 쇼츠 찍느냐”는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의 비판에도 아랑곳하지 않았다.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 이후로는 입을 굳게 닫았다. 허공을 쳐다보거나 눈을 질끈 감는 모습도 보였다. 1시간40분 정도 침묵 속에 국감장에 앉아 있다가 오전 감사가 중지되자 회의장을 빠져나갔다. 최 의원은 “이석하면 안된다”며 조 대법원장을 쫓아가면서 소리를 질렀다. 민주당이 별렀던 사법부 수장을 향한 무리한 국감은 결국 망신주기와 다름이 없었던 셈이다.
김판 한웅희 기자 pa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