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가 CCTV·GPS로 감시”… IT 동원 ‘갑질’에도 정부는 뒷짐

입력 2025-10-14 00:02 수정 2025-10-14 00:02

“관리자가 법인차량 위치확인시스템(GPS)을 계속 확인합니다. 이를 바탕으로 현장직인 제게 특정 장소에 왜 갔는지, 오래 머문 이유가 무엇인지 일일이 확인합니다. 얼마 전 처음으로 유급휴가를 사용한 이후부터 이 같은 보복성 감시가 시작됐습니다.”

이 사례는 최근 시민단체 직장갑질119에 접수된 상담 내용이다. 산업계에서 이처럼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직원 감시가 무분별하게 이뤄지고 있지만 이를 규제할 법과 제도는 준비되지 않은 실정이다.

직장갑질119와 이용우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13일 국회에서 공동 개최한 ‘전자 노동감시 실태 및 법제도 개선과제 토론회’에서는 카카오, 엔씨소프트, 배달의민족 등 대형 정보기술(IT) 기업의 직원 감시 실태에 관한 증언이 쏟아졌다.

송가람 화섬식품노조 엔씨소프트지회장은 “엔씨소프트가 15분 이상 자리를 비운 직원은 사유를 소명해야 하는 시스템 도입을 검토 중”이라며 “마우스 움직임을 감지해 활동을 추적하는 이 시스템은 사생활의 비밀과 자유 및 인격권을 침해한다”고 말했다.

서승욱 화섬식품노조 카카오지회장은 “지난달 사측은 직원 개인 기기에 대한 포렌식 권한을 요구했다”며 “일주일 만에 철회했지만 노동자의 개인정보 기본권이 위태롭다는 현실을 깨닫는 계기였다”고 밝혔다.

배달의민족, 쿠팡이츠 등 배달 플랫폼 라이더들은 앱에 GPS 정보 24시간 수집을 허용하지 않으면 운행할 수 없다. 구교현 공공운수노조 라이더유니온지부장은 “두 업체 모두 과거에는 ‘앱 사용 중에만 허용’으로도 설정 가능했지만 지난해부터 일방적으로 정책을 변경했다”고 전했다.

발제를 맡은 권석현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변호사는 “근로기준법을 개정해 전자감시를 원칙적으로 금지하고 노사 간 대등한 합의를 통해서만 예외적으로 허용해야 한다”며 “감시의 목적과 범위, 방법을 근로계약에 명시하고 위법하게 수집된 정보의 증거능력을 배제해 사용자의 위법 행위 유인을 차단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부의 ‘책임 떠넘기기’식 대응도 문제로 지적됐다. 노동자들은 고용노동부를 전자 노동감시 피해 해결의 1차 창구로 인식하는데 노동부는 개인정보보호위원회 소관이라며 발을 빼기 일쑤라는 것이다. 개인정보보호위는 근로감독이나 직접적인 행정 조치 권한이 없어 신속한 대응이 어려운 상황이다. 권 변호사는 “노동부에 명확한 감독 권한을 부여함으로써 근로감독관이 사업장에 직접 출입해 실태를 조사하고 위법 행위에 대해 시정명령, 과태료 부과 등 조치를 취하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황민혁 기자 okjs@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