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권교체와 함께 활력을 되찾았던 한·일 관계가 일본 ‘극우 총리’ 등장 가능성이 커지면서 시계 제로 상황에 부닥치게 됐다. 차기 총리를 둘러싸고 일본 정계가 요동치고 있지만 유력 후보인 다카이치 사나에 자유민주당 총재의 존재감이 여전히 크다. 민족주의적 역사관이 분명한 인사여서 한·일 간 역사 갈등이 수면 위로 올라온다면 양국 간 해빙 무드도 순식간에 얼어붙을 수 있다.
13일 일본에 정통한 소식통에 따르면 다카이치 총재가 차기 일본 총리가 될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26년간 이어져 온 자민당과 공명당의 연정이 지난 10일 붕괴하면서 ‘다카이치 총리설’이 흔들리는 분위기였지만 큰 이변은 없을 것이란 관측이다.
이 소식통은 “일본 야당이 힘을 합치기 어려운 상황이라 여전히 (거대 여당인 자민당의)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가 될 가능성이 80% 정도”라며 “다카이치 총재가 총리가 되면 우파의 지지를 얻어야 하기 때문에 한·일 간 역사 문제를 두고 세게 나올 수 있다”고 예상했다. 호사카 유지 세종대 교수도 “다카이치 총재는 위안부 문제와 강제징용 사실을 인정하지 않는다”며 “위안부 문제에 대한 책임을 인정한 고노 담화를 수정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고 말했다.
우리 정부는 일단 일본 총리가 바뀐다 하더라도 이시바 시게루 정권에서 형성된 양국 우호 관계는 큰 변동이 없을 것이란 입장이다. 자민당 내에서도 한·일 관계의 중요성에 대한 공감대가 과거보다 폭넓게 형성돼 있다는 것이다. 양기호 성공회대 일본학과 교수는 “크게 보면 역사 문제에서 충돌 가능성이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안보 문제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한국과 관계를 흐트러뜨리진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호사카 교수는 “총리가 바뀌어도 한·일 관계의 기조가 바뀌지 않는다는 것은 한국적인 이야기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아베 신조 정권에서 한·일 갈등으로 인해 일본도 손해가 컸기 때문에 자민당 내에서도 다카이치 총재가 지나치게 극우라고 우려하는 이들이 많다”고 덧붙였다.
양국 관계의 가장 큰 암초는 야스쿠니 신사 참배다. 다카이치 총재는 태평양전쟁 A급 전범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지속해서 참배해 왔다. 그가 ‘여자 아베’라는 별명을 가진 만큼 아베 전 총리처럼 현직 총리 신분으로 참배에 나설 수 있다.
반대로 총리가 되면 실용적 선택을 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아베 전 총리도 재임 기간 중 2013년 단 한 차례 야스쿠니 신사를 참배하는 데 그쳤다. 다카이치 총재는 일단 몸을 낮추고 있다. 오는 17~19일 야스쿠니 신사에서 열릴 추계 예대제 참배도 보류했다고 현지 언론이 지난 8일 보도했다. 독도 문제도 잠재적 불씨다. 다카이치 총재는 지난달 27일 다케시마(일본이 주장하는 독도의 명칭)의 날 행사에 참석하는 정부 대표를 차관급에서 장관으로 격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최예슬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