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사법부 수장 앉혀 놓고 정쟁… 현장 국감에서도 이럴 건가

입력 2025-10-14 01:30
이재명 정부 첫 국정감사가 시작된 13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법제사법위원회 국정감사에서 조희대 대법원장이 굳은 표정으로 여야 의원들의 설전을 지켜보고 있다. 이병주 기자

조희대 대법원장이 어제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 국정감사에 출석했으나 준비한 인사말만 읽고 의원들의 질의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관례와 달리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 후에도 이석이 허가되지 않아 한동안 피감기관석에 앉아 여야 의원들의 말씨름을 지켜봐야 했다. 국회가 사법부 수장을 불러 정쟁의 한복판에 앉혀 놓은 모습을 보여준 건 여러모로 적절치 않은 일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증인 채택에 불출석 의견서를 낸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에서 “재판을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면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이 위축된다”고 말했다. 그는 관례대로 인사말 후 퇴장하려 했으나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이석 허가를 받지 못해 90분가량 굳은 표정으로 국감 상황을 지켜봤다. 추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이 증인이 아닌 참고인이라고 설명하며 의원들에게 질의하도록 했다. 그러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질의를 이어가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간 설전이 이어졌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천 처장은 “오늘 (국감에) 대법원장이 출석할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사법부가 삼권분립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삼권분립, 사법부 존중 이런 부분이 이 자리에서도 실현되는 모습을 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야 의원들의 고성 공방이 계속 이어지자 추 위원장은 오전 11시40분쯤 감사를 중지하고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허가했다.

대법원장이 국감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예상됐던 일이다.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낸 대법원장을 갑자기 참고인으로 칭하며 의원들에게 질의하도록 한 건 부적절한 의사진행이었다. 법사위는 15일엔 대법원에 직접 가서 현장 국감을 할 예정인데 국회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법사위는 현장 국감에서는 어제와 같은 정쟁이 재연되지 않도록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법부도 대법원이 재량권을 남용해 국민주권주의를 침해하려 했다고 의심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점은 직시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이 “작금의 여러 상황에 대해선 깊은 책임감과 함께 무겁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다양한 의견에 귀기울이며 국민에 대한 봉사와 책임을 충실히 다하겠다”고 언급한 만큼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