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희대 대법원장이 어제 국회에서 열린 대법원 국정감사에 출석했으나 준비한 인사말만 읽고 의원들의 질의에는 아무런 답변을 하지 않았다. 관례와 달리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 후에도 이석이 허가되지 않아 한동안 피감기관석에 앉아 여야 의원들의 말씨름을 지켜봐야 했다. 국회가 사법부 수장을 불러 정쟁의 한복판에 앉혀 놓은 모습을 보여준 건 여러모로 적절치 않은 일이다.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의 증인 채택에 불출석 의견서를 낸 조 대법원장은 인사말에서 “재판을 이유로 법관을 증언대에 세우면 헌법과 양심에 따른 재판이 위축된다”고 말했다. 그는 관례대로 인사말 후 퇴장하려 했으나 추미애 법사위원장의 이석 허가를 받지 못해 90분가량 굳은 표정으로 국감 상황을 지켜봤다. 추 위원장은 조 대법원장이 증인이 아닌 참고인이라고 설명하며 의원들에게 질의하도록 했다. 그러자 “있을 수 없는 일”이라며 항의하는 국민의힘 의원들과 질의를 이어가려는 더불어민주당 의원들 간 설전이 이어졌고 천대엽 법원행정처장이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요청하기도 했다. 천 처장은 “오늘 (국감에) 대법원장이 출석할지 고민을 많이 했지만 ‘사법부가 삼권분립을 존중받기 위해서는 우리도 국회를 존중해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삼권분립, 사법부 존중 이런 부분이 이 자리에서도 실현되는 모습을 원한다는 말씀을 드리고 싶다”고 했다. 하지만 이후에도 여야 의원들의 고성 공방이 계속 이어지자 추 위원장은 오전 11시40분쯤 감사를 중지하고 조 대법원장의 이석을 허가했다.
대법원장이 국감에서 의원들의 질의에 답변하지 않을 것이라는 건 예상됐던 일이다. 증인으로 출석할 수 없다는 의견서를 낸 대법원장을 갑자기 참고인으로 칭하며 의원들에게 질의하도록 한 건 부적절한 의사진행이었다. 법사위는 15일엔 대법원에 직접 가서 현장 국감을 할 예정인데 국회에서와 비슷한 상황이 벌어질 가능성이 크다. 법사위는 현장 국감에서는 어제와 같은 정쟁이 재연되지 않도록 깊이 고민해야 할 것이다. 아울러 사법부도 대법원이 재량권을 남용해 국민주권주의를 침해하려 했다고 의심하는 국민이 적지 않다는 점은 직시해야 한다. 조 대법원장이 “작금의 여러 상황에 대해선 깊은 책임감과 함께 무겁고 안타까운 마음을 금할 수 없다”며 “다양한 의견에 귀기울이며 국민에 대한 봉사와 책임을 충실히 다하겠다”고 언급한 만큼 이를 구체화할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