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어리석었네. 돈과 명예, 출세와 권력만 좇아 쌓은 나만의 망대는 모두 허상이었어. 여기(천국에) 와 보니 믿음, 소망, 사랑을 가득 채워와야 하더구먼. 이럴 줄 알았으면 실컷 베풀고 올 것을….”
세월이 묻어나는 한 시니어 배우의 독백이 무대를 채우자 객석 곳곳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새어 나왔다. 최근 서울 강남구민회관에서 열린 시니어 창작 가족뮤지컬 ‘망대’의 한 장면이다. 무대에 오른 이는 58세에서 81세 사이의 시니어 배우들. 객석에는 배우들의 자녀뻘로 보이는 3040세대와 그 손을 꼭 잡고 공연을 보러온 유·초등학생 등 다양한 세대가 가득했다. 서울시 지정 전문예술단체인 코리아큐코멀티예술협회 소속의 신앙인들이 7개월간 연습해 완성한 이번 작품엔 특별한 의미가 있다. 시니어 세대가 관람하는 것이 아니라 공연자로서 다음세대에 전하는 메시지를 담아 올린 공연이라는 점이다. 각본과 연출을 맡은 최경희(65) 총감독은 “세대 간 단절이 깊어가는 시대에 성경적 가치에 근거한 삶의 의미를 예술로 풀어내고자 했다”면서 “공연 자체가 다음세대에게 보내는 신앙의 메시지이길 바랐다”고 말했다. 이날 무대에 8살 손녀와 함께 오른 김비송(66) 배우는 “뮤지컬을 하면서 신앙의 유산을 다음세대에게 물려주는 하나의 통로가 될 수 있다고 느꼈다”면서 “손녀가 세상 기준이 아닌 성경이 말하는 사랑과 소망을 붙들며 살아가길 기도하고 있다”고 했다.
한국사회에서 시니어는 이미 교육과 돌봄의 중요한 주체로 자리 잡고 있다. 2021년 전국보육실태조사에 따르면 맞벌이 등을 이유로 손자녀 양육에 참여하는 조부모 비율은 48.4%에 달한다. 특히 한국교회 안에서는 교회에서 멀어진 3040세대 부모 대신 보육의 키를 쥔 조부모 세대가 손자녀의 신앙을 이끄는 사례들이 주목받고 있다. 교회 주일학교에서 시니어 봉사자 비중이 커지고 있는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보육을 전담하는 손자녀의 신앙교육을 직접 하는 경우부터 시니어 가족뮤지컬처럼 신앙적인 접점을 넓히는 활동까지 그 영역도 확대되고 있다. 강원도 원주에서 막내딸 가족과 함께 5년째 살고 있는 최영두(69) 장로는 손녀와 매일 가정예배를 드린다. 그는 “일주일에 한 번은 손녀에게 예배 인도까지 맡기며 자연스럽게 말씀 교육이 이어지고 있다”며 “등하교와 병원 이동까지 함께하며 매사에 격려하고 기도해주는 것이 신앙 전수의 시작”이라고 말했다. 또 “같은 교회를 출석하면서 함께 예배하고 훈련받는 환경이 손녀에게 큰 영향을 준다”는 설명도 덧붙였다.
전문가들은 이런 현상을 보다 적극적으로 재인식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한다. 기존엔 교회에서 다음세대를 맡는 교사 연령이 높아지는 상황 등을 주로 우려하면서 바라봤다면 이젠 그런 인식을 전환해 시니어 인력의 가능성과 활용 방안에 집중할 때라는 것이다.
한국기독교시니어사역연합 총무 윤영근 목사는 13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시니어 세대를 교회 주변 인력이 아닌 신앙 생태계의 핵심축으로 재조명할 시점”이라고 말했다. 예배와 훈련 중심의 신앙공동체나 순장·목자 시스템을 기반으로 한 교구에서 시니어들의 신앙 전수 효과가 크게 나타난다는 점이 한 근거다. 그는 “주일학교 아이들은 줄어드는데 시니어 세대는 여전히 믿음을 지키며 교회를 떠받치고 있다”면서 “가정과 교회에서 신앙의 마지막 골든타임을 지킬 수 있는 사람은 바로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라고 강조했다.
김수연 박효진 기자 pro1111@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