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차전지 소재를 수출하는 연매출 1300억원 규모의 A사는 2019년 해외 특허관리전문회사(NPE)로부터 특허권 침해를 이유로 피소당했다. 특허청의 법률 지원을 받아 다행히 경쟁사 특허를 무효화시키는 데 성공했지만, 법정 다툼이 마무리된 건 4년이 지난 2023년에서였다. 이같이 국내 수출 기업들은 해외에서 날아드는 특허 소송 리스크에 종종 시달리고 있다.
그런데 한국 기업을 해외 ‘특허 괴물’의 공격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지식재산처(옛 특허청)의 특허분쟁대응전략지원사업이 제기능을 못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사업 예산이 3년 만에 반토막 수준으로 줄어들면서 특히 자체 법적 대응 여력이 떨어지는 중소·중견 기업들이 NPE의 소송 공세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13일 허성무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이 지식재산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해당 사업의 특허 관련 분쟁대응 예산은 2020년 70억5000만원에서 2022년 105억5000만원으로 증가했지만 이후 매년 줄어들어 올해는 50억2500만원까지 떨어졌다.
해당 사업의 핵심 목적은 해외에서 NPE와의 특허 분쟁에 휘말린 한국 기업의 법률 대응을 지원하는 것이다. NPE는 막대한 수의 특허를 무기로 수출 기업에 소송을 걸며 로열티 협상 등을 통해 수익을 올리는 업체다. 지식재산처의 주요 지원 대상은 해외 거대 NPE에 맞설 여력이 부족한 중소·중견 기업과 대학 연구실 등이다. 이 사업은 그간 눈에 띄는 성과를 내왔다. 2019~2023년 평균 분쟁 억제율(분쟁 미발생)이 98.3%에 이른다. 분쟁이 발생해도 특허청이 개입한 경우 소송·심판에서 승소하거나 유리한 조건으로 합의하는 경우 등 ‘평균 유리 종결률’이 84.2%였다.
그런데 예산이 크게 감소하면서 지원을 받는 기업 수도 가파르게 줄고 있다. 2023년까지만 해도 신청 기업 984곳 중 약 43%인 425곳이 수혜를 받았지만, 지난해에는 1077곳이 신청했음에도 293곳(27.2%) 만이 법률 대응 지원을 받을 수 있었다. A사의 경우 NPE의 소 취하를 끌어내기 위해 장기간 분쟁 성향 분석, 소장 및 특허 분석, 무효조사 진행, 해외 대리인 의견 확보, 라이선스 협상 전략 수립 등 과정을 거쳤다.
NPE와의 소송 패배로 한국 기업이 입는 손해는 수조원에 이를 것으로 추산된다. 지식재산처가 미국에서 한국 기업이 NPE에 패소한 특허침해소송 3건을 분석한 결과 손해배상액 규모 총액(지방법원·1심 기준)이 4억2248만 달러(약 6018억원)에 달했다. 같은 기간(2021~2025년 7월) 전체 피소 건수가 345건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전체 배상 규모는 훨씬 더 클 것으로 보인다.
허 의원은 “지난 정부에서 해외 특허분쟁 대응 예산이 계속 줄어들면서 우리 기업들이 글로벌 특허소송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며 “특허청을 지식재산처로 승격하고 지식재산분쟁대응국을 신설한 만큼 예산과 조직 확대에 힘을 써야 한다”고 말했다.
김지훈 기자 germa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