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게임 산업이 인공지능(AI)을 중심으로 한 대전환기에 들어섰다. 게임 제작과 운영 전반에 AI가 본격 투입되면서 산업 구조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정부가 국가 AI 프로젝트 ‘K-AI’ 본사업을 출범하고 주요 게임사가 자체 AI 모델을 전면화하면서 ‘게임×AI’ 시대가 본격화하는 모양새다.
최근 게임사들은 AI 기술 개발과 활용에 대대적인 투자를 단행하고 있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지난 8월 K-AI 모델 개발 주관 5개 팀을 선정했는데, 이 중 엔씨소프트의 AI 전문 자회사 ‘NC AI’가 포함돼 게임 분야의 독자적 AI 개발력을 인정받았다.
NC AI는 멀티모달(복합형 AI) 기반의 ‘VARCO’ 모델을 앞세워 음성, 이미지, 3D 객체를 자동 생성하는 도구군을 개발하고 있다. 최근에는 원음색을 보존한 자동 더빙 기술을 공개하며 글로벌 현지화 비용 절감의 가능성을 보여줬다.
엔씨소프트는 AI를 단순 보조 도구가 아닌 차세대 핵심 기술 축으로 규정하고 있다. NC AI는 최근 KAIST, 서울대 등과 함께 파운데이션 모델 공동 연구를 진행하며 언어·문화적 맥락을 반영한 한국형 데이터셋 구축에 착수했다. 회사 내부에서는 게임 시나리오, 대사, 캐릭터 감정 표현까지 AI가 자동으로 제안하는 실험도 병행 중이다. 엔씨는 향후 VARCO 모델을 외부 콘텐츠 제작사에도 개방해 ‘AI 플랫폼 사업’으로 확장한다는 청사진을 제시했다.
크래프톤은 독립 조직 ‘KRAFTON AI’를 통해 게임 특화 대규모언어모델(LLM)과 경량 모델(SLM)을 병행 개발 중이다. 지난 1월 CES에서는 엔비디아와 협력한 ‘코플레이어블 캐릭터(CPC)’를 시연해 AI 팀메이트가 실시간으로 게임 내 환경을 판단하고 의사결정하는 모습을 선보였다. 실제 배틀로얄 장르에 적용 가능한 수준으로 평가받고 있다.
크래프톤은 AI를 ‘두 번째 사업 엔진’으로 삼겠다는 전략을 명확히 하고 있다. KRAFTON AI는 사내 데이터 수집과 정제 파이프라인을 고도화해 1인칭 슈팅(FPS)·서바이벌 장르에 특화된 행동 예측 모델을 연구 중이다. 회사는 연내 일부 신작에서 AI 보이스·모션 캡처 자동화 기능을 시험 적용할 계획이다. 향후 메타휴먼 기술과 결합해 몰입형 서사 구조도 구현한다. 아울러 AI 윤리 원칙을 별도로 마련해 학습 데이터의 투명성 관리에도 소홀히 하지 않겠다는 계획이다.
넥슨은 NDC 2025 컨퍼런스에서 LLM 기반 NPC AI 에이전트 개발 현황을 공개하며 NPC의 기억력 강화, 자연스러운 음성 생성, 모델 경량화 등을 향후 과제로 제시했다. 내부 연구조직 인텔리전스랩스는 AI 기반 게임 흥행 예측 시스템과 통합 개발·운영 플랫폼 ‘게임스케일’을 통해 자동 QA, 밸런싱 최적화, 이상행위 탐지 등 다양한 AI 활용 사례를 실험 중이다.
넷마블은 지속가능경영 보고서에 ‘바른 AI’ 원칙을 명시하는 동시에 이상행위 탐지 시스템의 AI 고도화에 나서고 있다. 컴투스는 내부 조직 ‘AX Hub’를 신설해 외부 전문사와의 공동 AI 연구를 확대 중이다.
미국 시장 조사 업체 ‘마켓 리서치 퓨처’에 따르면 국내 게임 생성형 AI 시장은 지난해 9130만 달러 규모에서 2035년 3억1980만 달러로 약 3.5배 성장할 전망이다. 연평균 12.06%의 성장률이다.
한 대형 게임사 AI 조직 리더는 “정부의 예산 확대와 게임사들의 투자 경쟁이 맞물리면서 게임 산업계의 AI는 더욱 가파르게 성장할 수 있다”면서 “게임 개발뿐 아니라 서비스 전반에서 AI의 효용성이 충분히 검증된 만큼 회사 입장에서 AI에 투자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고 말했다. 다른 게임사 AI 담당자는 “내년쯤이면 AI가 실제 유저 경험을 바꾸는 원년이 될 것”이라면서 “데이터 저작권, AI 표기 의무, 배우 음성 학습 같은 윤리 이슈가 산업계 핵심 과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이다니엘 기자 d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