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진은 탐정이 돼야 한다. 반쪽이 된 몸, 구석구석 박힌 구타와 고문 흔적, 채취한 혈액 등이 말해주는 730일 넘게 몸이 겪은 일을 찾아내야 한다. 환자의 말 속에서 또는 말을 기피하는 것에서 2년 넘는 낮과 밤에 일어난 일도 유추해야 한다. 심리 안정도 중요하다. 부드러운 침대, 환자 친화적인 간병용품, 은은한 조명, 환자가 내밀 ‘방해 금지’ 팻말도 필수다. 환자가 앞으로 지인과 어떻게 대화하고 또 어떤 말은 하지 말아야 할지도 조언해야 한다. 무엇보다 2년 넘게 겪은 고통을 며칠 내 다 말할 수 없기에 그들만의 충분한 시간과 공간을 허락하며 오래 기다려줘야 한다.
팔레스타인 무장단체에 붙잡혔던 이스라엘 생존 인질들이 13일 풀려났다. 가족 말고도 그들을 간절히 기다려온 이들이 있다. 의료진이다. BBC 방송이 12일 전한 이스라엘 라빈메디컬센터 의료진 얘기는 숭고했다. 그들은 인질을 맞을 기쁨으로 벅차 있었고, 치료 열정으로 가득했다. 이들은 기존 병원 일에 더해 인질 치료를 위해 추가 근무를 자원했다. 앞서 석방된 인질도 치료했던 그들은 “인간 정신의 강인함을 깨달았다”고 말했다.
인질 의학(Captivity medicine)으로 명명된 이들의 일은 새 분야여서 여전히 치료법을 ‘개발 중’이라고 한다. 국내에서도 충격적 사건을 경험한 이들의 재활을 돕는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 치료가 있다. 하지만 언제 보복 살해될지 모를 상황에서 730일 넘도록 지하터널로 끌려다닌 경험을 일반적 PTSD 치료로 치유하긴 쉽지 않을 듯하다. PTSD 분야가 앞으로 더 세분화되고 전문화되고, 깊이 있게 발전해 나가면 좋을 것이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자국민에 그런 치료를 제공하지만 어린이 수만명을 비롯한 팔레스타인 난민 수십만명의 전쟁 트라우마와 가족과 신체를 잃은 상흔은 누가 치유할까. 앞으로 국제사회가 물리적 전후 복구에 더해 난민들의 마음 속 상처를 치유하는 일에 적극 나서야 하는 이유다. 그 상흔에 직접적 책임이 있는 이스라엘부터 난민 치유에 도움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손병호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