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의춘추] 선출 권력의 경계선

입력 2025-10-14 00:34

사법개혁 앞세운 집권 여당 더욱 거세지는 정치적 압박
폴란드·튀르키예 사법 장악 대가는 신뢰의 붕괴로 돌아와
개혁이 헌법의 경계선 넘을 때 권력의 정치 실험으로 끝날 것

2025년 가을, 대한민국 정치의 풍경은 사법부를 겨냥한 정치적 압박으로 요약된다. 집권 여당은 사법 신뢰 회복을 내세우며 대법관 증원, 법관평가제 개편, 내란 전담재판부 설치, 조희대 대법원장 사퇴 요구까지 잇따라 꺼내 들었다. 개혁의 방향이 어디를 향하느냐에 따라 한국 민주주의의 향방이 달라질 수 있다는 점에서 지금의 논의는 결코 가볍지 않다.

대법원이 이재명 대통령 후보 사건을 유죄 취지로 파기환송한 이후 사법부를 향한 정치권의 시선은 한층 날카로워졌다. 더불어민주당은 “사법부가 정치화됐다”고 비판하며 법원 구조 자체를 손보려는 개혁에 나섰다. 대법관 수를 대폭 늘리고 법관 평가 과정에 외부 인사를 참여시키는 법안도 논의되고 있다. 표면적으로는 사법 개혁이지만 추진 배경과 그 과정은 적잖은 우려를 낳고 있다.

사법 개혁의 필요성을 부정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재판 지연, 판결 불투명, 폐쇄적인 법원 문화 등 사법부의 신뢰를 흔드는 요인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그러나 개혁의 필요성과 방식은 별개 문제다. 개혁이 정치적 불만의 표현으로 추진될 때 그 결과는 신뢰 회복이 아니라 오히려 신뢰 상실로 이어질 수 있다.

민주당의 주장은 ‘선출권력이 임명권력보다 높다’는 논리에 기초한다. 국민이 직접 선택한 국회가 사법부를 개혁할 권한을 갖는다는 것이다. 일견 국민주권 원리를 강조하는 차원으로 보이지만 헌법이 보장한 권력분립의 원칙과는 본질적으로 다르다. 헌법은 국가의 모든 권력을 국민으로부터 나오게 하되 그 권력을 세 갈래로 나누어 서로 견제하도록 했다. 입법·행정·사법은 각각 독립된 기능을 수행한다. 그 어느 기관도 다른 기관의 위에 설 수 없다. 따라서 사법부 독립은 특권이 아니라 권력의 남용을 막기 위한 헌법적 균형의 한 축이다. 이 균형이 무너지면 권력은 스스로를 제어할 장치를 잃는다. 선출권력의 정당성이 사법 독립을 압도하는 순간 민주주의는 균형을 잃고 다수의 힘이 법 위에 서게 된다. 동행명령과 고발 가능성을 거론하는 등 최근 조희대 대법원장을 향한 민주당의 압박은 이 균형이 얼마나 쉽게 흔들릴 수 있는지를 보여준다.

사법부 수장의 판단이 논란이 될 수는 있어도 그 책임은 헌법이 정한 절차에 따라 다뤄져야 한다. 정치적 불만을 이유로 사법부 수장을 몰아세우는 것은 입법권이 사법권의 독립을 침해하는 전례로 남을 수 있다.

역사는 이런 장면이 민주주의의 후퇴로 이어졌음을 보여준다. 1937년 미국의 프랭클린 루스벨트 대통령은 뉴딜 정책을 가로막은 연방대법원을 향해 대법관 수를 늘리는 ‘사법부 개편안(court-packing plan)’을 내놨다. 입법으로 가능하다는 논리였지만 “권력의 불편함을 이유로 사법부를 손보는 것은 헌법 정신에 대한 도전”이라는 비판이 거셌다. 결국 법안은 무산됐고 그 실패는 사법부의 독립을 지켜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2015년 폴란드의 보수 여당은 헌법재판소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자 사법 개혁을 내세워 법관 임명 구조를 바꿨다. 정년을 단축하고 여당 인사들이 법관을 추천하게 했다. 결과는 국제적 고립이었다. 유럽연합(EU)은 폴란드를 법치주의 훼손국으로 지정했고, 유럽사법재판소는 잇따라 위헌 판결을 내렸다. 사법부를 장악한 정부는 잠시 권력을 누렸지만 그 대가는 신뢰의 붕괴였다. 튀르키예에선 국가안보재판소가 정권 비판자들을 처벌하는 수단이 됐다. 유럽인권재판소는 이를 “정치의 연장선상에 있는 위헌적 법원”이라 판결했고 튀르키예는 결국 재판소를 폐지했다. 이들 사례는 같은 교훈을 남긴다. 정치가 법의 경계선을 넘는 순간 법은 더 이상 사회의 기준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대한민국은 지금 그 경계선 위에 서 있다.

사법부가 국민 앞에서 성찰해야 할 지점은 분명히 있다. 사법 개혁도 필요하다. 그러나 그 개혁은 정치가 주도하는 공세가 아니라 사법부 스스로의 자정과 국민적 합의, 헌법적 절차와 제도를 통한 자율적 개혁이어야 한다. 민주주의의 품격은 권력의 절제에서 비롯된다. 선출권력이라 해도 헌법이 부여한 경계선을 넘어설 수 없다. 법이 정치의 도구가 되는 순간 법치주의는 형식만 남는다. 사법부의 독립은 법관의 특권이 아니라 국민이 권력으로부터 보호받는 최소한의 장치다. 그 울타리를 허무는 개혁이라면 그건 개혁이 아니라 권력의 실험일 뿐이다.

남혁상 편집국 부국장 hsna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