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의 희토류 통제에 미국이 ‘100% 관세’로 맞불을 놓으며 재점화된 미·중 갈등의 불똥이 경북 경주에서 열리는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로 튀고 있다. APEC 정상회의가 한·미 관세 협상 시한으로 여겨지는 상황에서 미·중 통상전쟁이 격화하자 정부는 초조함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12일 정부 소식통에 따르면 미·중 정상의 참석 가능성은 여전히 크지만 APEC 정상회의의 ‘빅 이벤트’로 기대되던 미·중 정상의 만남 여부는 불투명하다. 정부 고위 당국자는 이날 “양국 간 줄다리기가 워낙 세게 벌어지다보니 아무것도 확정적으로 말할 수 없는 상황”이라며 “양국 정상 간 회동은 있을 것으로 예상하지만 현재로선 상황 자체가 유동적이고 예측이 쉽지 않은 상태”라고 말했다.
두 달 넘게 공전하고 있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논의에 돌파구가 마련될지는 여전히 안갯속이다. 미국은 대미 투자액 3500억 달러 가운데 현금 지급 비중을 늘리라고 압박하고 있으나 우리 정부는 국익에 반하는 협상은 불가능하다며 맞서고 있다. 당초 정부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큰 틀에서 관세 협상의 합의점을 찾을 것이란 전망이 컸다. 그러나 미국이 빅3 교역국인 중국과의 협상을 우선순위로 둘 경우 한·미 관세 협상도 뒷전으로 밀릴 개연성이 있다.
한 여권 고위 관계자는 “APEC 정상회의 전까지 미국과의 관세 협상을 마무리할 수 있는 여유가 없어 보인다”면서 “우리는 우리 것만 지키기도 벅찬 상황”이라고 전했다. 지난 4월 미국은 145%, 중국은 125%의 관세 폭탄을 던지며 양국 갈등은 극단으로 치달았다. 다음 달 이들은 상대에게 부과했던 관세율을 각 115% 포인트씩 인하하기로 하면서 90일간의 유예 기간을 정했다.
협상 지연 시 장단점은 분명하다. 협상 타결이 늦어지면 미국의 무리한 요구에 대응할 시간을 벌 수 있다. 반면 미국이 또 다른 청구서를 내밀 가능성도 존재한다. 반길주 국립외교원 교수는 “한·미 관세 협상 후속 협상이 지연된다면 시간을 벌 수 있다는 측면이 있지만 너무 지체되면 다른 식으로 협상력을 높이려고 일단락되고 있는 안보 의제 등을 다시 꺼내 들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외교 소식통은 “APEC 정상회의를 계기로 한·미 정상회담이 열리면 그 결과물은 나오게 된다”며 “현재 관세 협상이 진행 중인 만큼 (미·중 갈등과) 별개로 협상은 진행될 것”이라고 예측했다.
APEC 정상회의가 미·중 갈등의 2차 격전지가 된다면 정부의 정교한 외교력이 요구된다. 반 교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APEC 정상회의를 (중국과 협상의) 교두보로 보고 대중 레버리지를 높이려는 전략으로 나설 것”이라며 “한국이 글로벌 책임 강국으로서 지위를 높이려면 개최국으로서 주요한 역할을 해내야 한다”고 말했다.
APEC 정상회의까지 남은 약 3주 동안 트럼프 대통령과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의 방한 일정 및 방식이 어떻게 조율되느냐도 관건이다. 외교가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정상회의 기간(31일~11월 1일)보다 앞선 29일쯤 방한해 1박2일 또는 당일 일정을 소화할 가능성이 크다. 미·중 정상회담이 서울이 아닌 경주에서 열릴 경우 정부가 추진 중인 시 주석의 국빈방문도 성사 가능성이 낮아진다.
최예슬 최승욱 기자 smart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