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관계 근본적 변화 불러온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의 변화
냉전 해체 후 북한 고립 시대는
美 유일패권의 지정학적 산물
탈냉전 질서 때 작동 가능했던
민주당 정부 대북정책 바뀌어야
한반도 주변 국제정세의 변화
냉전 해체 후 북한 고립 시대는
美 유일패권의 지정학적 산물
탈냉전 질서 때 작동 가능했던
민주당 정부 대북정책 바뀌어야
이재명 대통령은 9월 22~26일 유엔총회 연설을 위해 미국을 방문했다. 이 대통령이 미국을 방문 중이던 시점에 정세현 전 통일부 장관과 정동영 통일부 장관의 발언이 주목받았다.
정세현 전 장관은 대통령 주변에 ‘동맹파’가 많다고 비판했다. 정동영 장관은 북한이 제시한 ‘두 개의 국가론’을 인정해야만 남북 관계 돌파구가 열릴 것처럼 발언했다. 둘의 발언은 많은 전문가들로부터 ‘한가한 소리’를 하고 있다는 비판을 받았다. 문제점 진단부터 현실과 괴리된 발언이었다.
1987년 민주화 이후를 기준으로 이재명정부는 ‘민주당 4기 정부’다. 그 앞에는 김대중정부, 노무현정부, 문재인정부가 있었다. 흥미롭게도 앞선 세 번의 민주당 정부는 모두 ‘협상과 대북 화해를 축으로’ 남북 관계 개선을 추구했다. 2006년 북한의 1차 핵실험 이후에는 ‘일괄 타결을 통한 북핵 문제 해결’이 민주당 정부의 대전략이었다.
민주당과 이재명정부가 잊지 말아야 하는 것은 남북 관계 역시 ‘국제정세 변화’와 연동해서 사고해야 한다는 점이다. 국제정세가 바뀌면 남북 관계의 양상도 달라진다. 이러한 사실을 누구보다 절절하게 알고 있는 쪽은 ‘북한 정부’다.
국제질서 양상에 따라 남북 관계 양상은 크게 2개의 국면으로 구분할 수 있다. 1국면은 ‘냉전기’와 일치한다. 시기로 보면 1945년 분단부터 1991년 냉전 해체까지의 시점이다. 국제적으로는 미국과 소련의 팽팽한 대결기였다. 국내적으로는 북한이 남한을 위협하는 국면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 정부의 최대 관심사는 ‘북한에 먹히지 않는 것’이었다. 이승만 대통령의 한·미 상호방위조약 체결, 1960년대 말 안보 위기를 맞아 박정희 대통령의 자주국방과 방위산업 육성은 그 연장이었다.
2국면은 ‘탈냉전기’와 일치한다. 시기적으로는 1991년부터 2022년까지다. 국제적으로는 소련 붕괴로 인해 ‘미국 유일 패권’의 시대가 열린다. 남과 북의 관계로 보면 1990년 한·소 수교, 1992년 한·중 수교가 이뤄진다. 한국은 소련, 중국과 수교했지만 북한은 미국, 일본과 수교하지 못했다. 이 시기에 소련과 중국에 느꼈던 북한의 배신감은 익히 알려져 있다. 북한 입장에서는 ‘고립의 시대’가 시작됐다.
고립의 시대를 맞은 북한의 해법은 두 축이었다. 한 축으로는 핵 개발, 다른 한 축은 북·미 수교였다. 둘은 서로 연결돼 있었다. 북핵 개발을 ‘협상의 지렛대로’ 미국과 수교하는 것, 그것이 북한의 최대 관심사였다. 1993년 북한의 핵확산금지조약(NPT) 탈퇴, 1994년 북핵 위기, 1994년 북·미 제네바 합의, 2006년 1차 북핵 실험, 2003~2007년 6차례에 걸친 6자회담, 2018년 문재인정부와의 정상회담, 2018년과 2019년 두 차례에 걸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의 정상회담은 모두 ‘고립의 시대’를 탈출하려는 북한의 몸부림이었다.
탈냉전기는 ‘미국 유일 패권의 시대’였다. 중국과 러시아는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에서 총 10차례에 걸쳐 북한 제재에 찬성표를 던졌다. 6번은 북핵 실험, 4번은 탄도미사일 발사 직후였다. 왜 중국과 러시아는 10차례나 대북 제재에 찬성했던 것일까. 1990년대와 2010년대 중반 이전까지 중국과 러시아의 최대 관심사는 경제 개발이었다. 그러자면 ‘미국에 잘 보이는 게’ 중요했다. 그래야만 미국, 일본, 유럽 국가들의 투자 유치와 기술 지원이 가능했다.
1990년대 후반에는 한국의 정치 상황도 바뀐다. 민주당 정부가 출범한다. 1998년 김대중정부, 2003년 노무현정부가 출범했다. 이들 정부는 정상회담, 6자회담, ‘일괄 타결을 통한’ 남북 관계 정상화를 추진했다. 문재인정부도 그 연장선에 있었다.
그러나 ‘탈냉전기’ 국면은 이제 끝났음을 인정해야 한다. 미국 유일 패권 시기가 끝났다. 중국과 러시아는 ‘미국에 잘 보일’ 필요가 없어졌다. 북한 고립의 시대도 끝났다. 북한이 ‘두 개의 국가론’을 주장하며 한국 정부에 냉담한 이유는 ‘얻을 게 없다’는 전략적 판단 때문이다. 핵 개발은 사실상 성공했고, 러시아와 중국 관계도 복원됐다.
이재명정부와 민주당은 국제 정세와 남북 관계의 ‘3국면’이 시작됐음을 인지해야 한다. 자주 대 동맹 구도가 ‘한가한 소리’로 비판받는 이유다. 국제 질서가 바뀌면 남북 관계도 바뀐다. 지금은 관성적 접근에서 탈피하고 ‘대전략’ 자체를 재조정해야 한다.
최병천 신성장경제연구소 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