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 양평군 공무원이 ‘김건희 의혹’을 수사 중인 민중기 특검팀의 조사를 받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개발부담금 업무에 관여했던 그는 김 여사 일가의 양평 공흥지구 개발 사업과 관련해 지난 2일 처음 특검에 불려갔고, 이튿날 새벽에야 귀가해 심경이 담긴 메모를 작성했다. 사망 후 공개된 메모의 내용은 충격적이다. 채 400자가 안 되는 글에 ‘강압·무시·수모·멸시·강요’ 같은 단어가 18차례나 나왔다. “모른다고 사실대로 말해도 계속 다그친다. 사실을 말해도 거짓이라 한다… 수사관의 무시와 강압에 전혀 기억도 없는 진술을 했다… 12시가 넘었는데 계속 수사하면서… 진술서도 임의로 작성해 답을 강요했다… 이렇게 치욕을 당하고… 수모와 멸시 진짜 싫다.”
이런 글을 써놓고 세상을 등진 이의 죽음을 ‘그런가 보다’ 하고 넘길 수 없다. “살인 특검”이라 공격하는 야당과 “죽음을 정쟁에 이용한다”며 반격하는 여당처럼, 정치적 재료로 소모할 사안도 결코 아니다. 그가 죽음에 이르게 된 경위, 특검 조사 과정의 진상을 밝혀야 한다. 이런 죽음이 낯설지 않아서 그렇다. 문재인정부의 적폐청산 수사 당시 5명이 이 공무원처럼 목숨을 끊었다. 지난 20년간 검경 수사 과정에서 자살한 피의자·참고인은 240명이 넘는다. 수사기관에 불려간 이들이 한 달에 한 명꼴로 목숨을 끊는 상황은 정상일 수 없는데, 이제 그런 기관을 제치고 진행한 특검 수사에서도 같은 일이 벌어졌다. 철저한 규명 없이 넘어간다면 앞으로도 한 달에 한 명씩 세상을 등지게 될지 모른다.
공무원의 메모에는 그를 조사한 특검 수사관 2명의 이름이 적시돼 있다. 이와 별도로 사망 현장에서 발견된 장문의 유서도 있다고 한다. 규정에 따라 조사 과정을 녹화한 영상이 있을 터이고, 조사실의 CCTV도 당시를 촬영했을 것이다. 이런 자료를 샅샅이 모아 분석하고 투명하게 공개하며 진상을 밝히는 일은 방법이 아닌 의지의 문제에 가깝다. 특검은 “강압이 없었다”고 하지만 당사자의 주장일 뿐이다. 특검의 특검이 됐든, 민관 진상규명위원회를 꾸리든, 다른 수사기관에 맡기든, 제3자를 통해 인권유린의 무리한 수사가 있었는지 확인하는 절차를 진행해야 한다. 정부 차원에서 나서야 할 문제다. 여권이 말하는 검찰 개혁도 결국 이런 일을 막자는 것 아닌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