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연준·법무부 공격
우리의 사법부 압박과 비슷
국가적 부작용으로 돌아올 것
우리의 사법부 압박과 비슷
국가적 부작용으로 돌아올 것
한국에서 사법부 독립 침해 논란이 진행 중이라면 바다 건너 미국에선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연준)와 법무부에 대한 독립성 침해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한국과 미국의 현 정부와 집권 여당은 정치 성향 등 많은 점이 다르지만 국가 내에서 정치권력이 작동되는 상황은 비슷한 점이 많다는 느낌이 든다. 독립성이 보장돼야 할 기관에 대한 끊임없는 압박 시도를 보다 보면 이것이 어쩔 수 없는 권력의 속성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지난 1월 취임 후 연준에 기준금리 인하를 지속적으로 압박해 왔다. 자신의 말을 거스르는 기관이나 인물에 대한 트럼프의 공격은 거침이 없다. 트럼프는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겨냥해 “멍청이”라고 비난하고 자리에서 물러날 것을 촉구했다. 조 바이든 정부 때 임명된 리사 쿡 연준 이사에 대해 주택담보대출 사기 의혹을 문제 삼아 해임을 통보했다. 해임 효력을 인정해 달라는 행정부 주장은 법원에서 잇따라 제동이 걸렸다.
기존 인사 축출 시도뿐만 아니라 측근 끼워 넣기도 병행됐다. 트럼프는 지난달 측근 스티븐 마이런 백악관 국가경제자문위원회(CEA) 위원장을 연준 이사로 지명했고 공화당 주도로 상원에서 인준안이 통과됐다. 마이런은 백악관 보직도 유지하겠다고 했는데 현지 언론에선 연준 독립성 우려를 키우는 조치라는 지적이 나왔다. 연준은 지난 17일 기준금리를 0.25% 포인트 인하했고 마이런은 홀로 소폭 인하에 반대하며 0.5% 포인트 ‘빅컷’을 주장했다.
트럼프의 연준 압박에 미 보수 언론에서도 우려가 적지 않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트럼프 시대의 비극 중 하나는 공화당이 단기적 정치 계산에 매몰돼 자신들의 결정이 장기적으로 미칠 영향을 고려하지 않는다는 점”이라고 지적했다. 향후 진보 성향 대통령이 “트럼프도 그랬다”며 백악관 고위 인사를 연준에 앉힐 수도 있기에 이런 선례가 국가적으로 해가 될 수 있다는 것이다.
트럼프 행정부는 ‘트럼프의 정적’들에 대한 기소도 이어가고 있다. 트럼프는 지난달 레티샤 제임스 뉴욕주 법무장관과 제임스 코미 전 연방수사국(FBI) 국장 등을 겨냥해 법무부에 “더 이상 미룰 수 없다”며 기소를 촉구했다. 결국 트럼프 상대 민사소송에 앞장섰던 제임스는 은행사기 등 혐의로, ‘러시아 게이트’ 수사를 지휘했던 코미는 의회 허위 진술 등 혐의로 각각 재판에 넘겨졌다. 정권 교체 후 정적들에 대한 연쇄적 기소가 이뤄지는 상황에 이게 한국 뉴스인지 미국 뉴스인지 헷갈릴 정도다.
미 언론에선 법무부의 전통인 정치적 독립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비판이 나온다. 워싱턴포스트(WP)는 트럼프의 압박과 잇따른 기소를 ‘법의 무기화(weaponization of the law)’라고 표현했다. WP는 “제임스도 권력을 남용했지만 트럼프가 똑같이 대응하는 게 정당화되지는 않는다”고 했다. WSJ는 “양당 모두 최근 몇 년간의 ‘로페어’(lawfare·법률 전쟁)가 실수였음을 인정해야 한다”며 “서로를 파괴하는 법률 전쟁은 위대한 국가를 운영하는 방식이 아니다”고 했다.
한국에선 정권 교체기마다 벌어지는 전 정부 인사 수사는 이제 익숙한 광경이다. 이재명정부 집권 후엔 대법원장을 겨냥한 여당의 사퇴 공세로 확장되고 있다. 대법원장이 위법을 저질렀다는 뚜렷한 증거가 있는 것도 아닌데 판결이 마음에 들지 않는다며 사법부 장악을 시도하는 모습이다. 법원 판결을 비판할 수는 있지만 명확한 법적 근거 없이 사퇴를 압박하고 입맛에 맞는 판결을 요구하는 건 전혀 차원이 다른 문제다. 이런 식으로 대법원장을 교체하고 사법부를 개혁해 정권 성향에 부합하는 대법원장과 대법관들을 대거 임명한들 향후 국민이 그런 사법부가 내놓는 판결에 승복할 수 있을까. 미 언론들이 지적했듯 독립성이 생명인 기관에 대한 전례 없는 압박이 장기적으로 국가에 어떤 부작용으로 돌아올지 숙고할 필요가 있다.
나성원 국제부 차장 naa@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