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 들면 당연히 오는 병’. 퇴행성 관절염에 대한 잘못된 통념이다. 실제론 노화 자체가 아닌 관절에 반복적으로 쌓인 과부하와 그 하중을 견뎌내는 재생 능력의 불균형이 문제다. 젊을 땐 연골과 뼈, 인대와 근육이 손상을 회복할 여력이 충분하지만 잘못된 보행 습관이나 과체중, 반복적 손상은 회복 속도를 서서히 갉아먹는다. 회복 속도가 손상 속도를 따라가지 못하는 그 순간에야 비로소 관절염이란 이름이 붙는다.
특히 여성에게 폐경은 중요한 분기점이다. 에스트로겐은 연골과 뼈의 대사, 근육의 질, 활막의 염증 반응에 모두 영향을 준다. 폐경 이후 이 보호막이 사라지면 그동안 숨어 있던 손상이 한꺼번에 드러난다. 환자들이 “폐경 이후 갑자기 무릎이 나빠졌다”고 말하는 이유다.
재생의학 관점에서 보면 관절은 손상과 회복이 끊임없이 동시에 일어나는 살아 있는 기관이다. 문제는 회복을 지지해 주는 환경을 우리가 무심코 무너뜨린다는 데 있다. 수면 부족은 성장호르몬과 회복 기전을 방해하고 만성 스트레스는 코르티솔을 높여 염증을 키운다. 비만은 하중만 늘리는 게 아니라 지방 조직에서 염증성 사이토카인을 분비해 연골 재생을 억제한다. 생활습관 하나하나가 관절의 재생력을 직접 흔드는 것이다.
의료 현장에서 주목하는 재생의학적 접근은 이런 재생 환경을 되살리는 것이다. 우선 기본기는 체중 관리와 근육 강화, 보행 교정이다. 여기에 자기 혈소판을 이용한 성장인자 주입(PRP)이나 골수 유래 줄기세포 치료 같은 생체치료는 관절 내 환경을 항염·항섬유화 방향으로 바꾸고 줄기세포가 직접 연골을 만들지는 않더라도 손상된 관절이 스스로 회복할 여지를 키운다. 중요한 건 이 모든 치료가 생활습관 교정과 병행될 때 효과가 있다는 점이다. 주사만 맞고 생활을 그대로 유지하면 재생 환경은 여전히 손상 방향으로 기울어져 금세 효과가 사라진다.
따라서 관절염 예방과 치료의 핵심은 ‘내 관절이 감당하는 하중을 줄이고 재생이 일어날 수 있는 환경을 회복하는 것’이다. 체중을 줄이고 하루 30분 이상 저충격 운동으로 근육을 강화하며 충분한 수면과 균형 잡힌 영양을 유지하는 것이 곧 재생의학적 치료다. 적절한 시점에 생체치료나 수술적 교정이 더해지면 그 효과는 배가된다.
퇴행성 관절염은 피할 수 없는 노화 현상이 아닌 관리 가능한 질환이다. 관절은 소모품이 아닌 재생할 수 있는 생명 조직이라는 사실, 그 재생을 지켜주는 주체는 결국 본인이라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늦기 전에 시작해야 한다는 말은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진료실에서 만난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이런 사실은 더 분명해진다. 60대 중반의 한 남성은 평생 건설 현장에서 일하며 하루에도 수십 번 무릎을 굽혔다 일어섰다. 그는 “젊을 때는 아무렇지도 않았는데, 이제는 계단만 올라가도 불에 덴 것처럼 무릎이 아프다”라며 절뚝거렸다. 검사해보니 그의 무릎은 이미 연골 간격이 거의 사라진 상태였다. 반면 비슷한 나이의 또 다른 환자는 농사일을 하면서도 꾸준히 빠른 걷기와 근력운동을 이어 왔다. 그는 “무릎이 걱정돼 운동을 게을리하지 않았다”고 했다. 검사에서 그의 무릎은 또래보다 훨씬 건강했다.
여성 환자도 대비된 몸과 그렇지 않은 몸은 극명하게 갈렸다. 폐경 직후 갑작스레 무릎이 부어 걸음을 옮기기 힘들어하던 한 여성 환자는 연골 손상이 빠르게 진행돼 고생하고 있었다. 반면 평생 수영을 하며 체중 관리를 해온 또 다른 여성은 폐경 이후에도 큰 변화가 없었다. 검사에서도 연골 손상은 거의 보이지 않았다.
관절은 나이를 먹는다고 저절로 망가지는 것이 아니다. 관절을 어떻게 써왔고 얼마나 회복할 시간을 줬느냐에 따라 60세 무릎이 40세처럼 남을 수도 있고 그 반대일 수도 있다. 관절은 자신을 회복할 힘을 지닌 조직이고, 그 힘을 살릴 수 있느냐 없느냐는 결국 환자 본인의 선택에 달려 있다. 지금의 작은 습관이 10년 뒤 내 무릎의 상태를 결정한다. 늦기 전에 무릎을 지킬 전략을 시작해야 한다.
선한목자병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