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마당] ‘영포티’ 구분법

입력 2025-10-13 00:40

10년 전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이 흥행할 때 ‘응팔’ 세대인 40대가 언론에 집중 조명됐다. 휴직을 하고 딸과 세계일주한 40대 아버지, 결혼을 해도 아이를 갖지 않는 부부. 새로운 트렌드에 민감하고 미래보다는 현재를 즐기겠다는 젊고 세련된 40대, 이른바 ‘영포티(young forty)’ 담론의 등장이었다.

10년이 지난 지금, 영포티가 다시 화제가 되고 있는데 의미가 180도 달라졌다. ‘상위 1%라고 착각하는 40대들의 홍대 헌팅’ ‘누가 우리를 40대로 보겠어?’ 등 조롱 일색의 유튜브 영상들 제목이 현재 분위기를 보여준다. 멋쟁이이자 탈권위적 40대가 주제파악 못하고 말만 번지르르한 채 후배 위에 군림하는 젊은 꼰대가 됐다. 한 증권사 애널리스트는 러닝화 회사 주가가 주춤하는 이유로 “아저씨들이 일상화로 착용해서”라 분석했다. 영포티가 쓰면 기피 상품이 되는 실정이다.

추석 연휴 기간 온·오프라인에서 나돈 ‘영포티 구분법’이 눈길을 끌었다. 여기선 김어준을 언론인이라고 믿고,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일가를 보고 가슴이 먹먹해지면 영포티다. 성평등 얘기가 나올 땐 목소리에 힘이 들어가는 이들, 뼛속까지 반미 성향이지만 아이폰과 나이키를 좋아하는 이들도 포함된다. 40대의 정치적 색깔(진보·친여), 내로남불 언행에 대한 보수화한 2030의 거부감이 영포티 이미지 급변의 단초가 됐음을 보여준다. 경제호황의 혜택만 누리고 책임지지 않는 40대에 대한 질시도 담겨 있다.

하지만 40대 삶이 평탄한 것만도 아니다. 이들은 부모와 자녀를 동시에 부양하는 낀 세대다. 노동 소득(4433만원)이 가장 많지만 평균 대출 규모(1억2100만원)도 최대다. 자살이 사망 원인 1위이며 연령별 이혼 건수도 1위다. 취업 걱정, 치솟은 집값에 좌절하는 20대만큼 40대의 경제 부담, 불안도 만만찮다. 서로를 비난하는 이유인 ‘맹목적 편향’과 ‘갈라치기’를 잠시 내려놓는다면 삼촌과 조카 같은 다정한 관계 복원도 가능하지 않을까. 이들을 표밭으로 여기고 갈등을 부추기는 정치적 노림수도 당연히 없어야 한다.

고세욱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