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돌봄’은 사람이 중심… 과학 만능주의 경계해야

입력 2025-10-14 00:07

1970년대 후반 ‘6백만불의 사나이’라는 미국 드라마가 있었다. 비행기 사고로 심각한 장애가 생겼다가 600만 달러를 들여 초능력 기계로 두 다리, 오른팔, 왼쪽 눈을 갈아 낀 주인공의 신나는 활약을 보러 흑백 TV 앞에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쥘 베른의 노틸러스가 80여년 후 핵잠수함이 되어 ‘해저 2만리’를 돌아다녔듯, 50년이 지나자 ‘사나이’도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기 시작한다.

그 꿈 같은 상황은 아니지만 로봇과 인공지능(AI)이 하루하루 장애인에게 접근해 오고 있다. 이미 환자들이 로봇의 도움으로 못 걷던 걸음을 걷고 팔과 손 기능을 회복하는 재활 치료를 받고 있다. 오래지 않아 의수, 의족, 목발 대신 팔·다리 로봇이 일상적인 보조 기기로 보급될 것이다. 자율 주행이 완성되면 시각이나 뇌병변 장애인들도 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 계단을 오르내리고 자율 주행까지 되는 휠체어가 개발되고 있다.

시각, 청각, 언어 장애인의 소통도 지원한다. 수어와 음성 언어를 통역해 주고 언어 장애인의 말을 명료하게 보정해 주기도 한다. 시각 장애인의 물체 식별을 돕고 표지판도 읽어 주면서 안전한 길로 안내한다. 손 혹은 시각 장애가 있는 분들이 음성으로 조명이나 가전제품을 작동시키는 기술도 있다.


장애 보조를 넘어 돌봄이 로봇과 AI의 중요 영역으로 부상하고 있다. 홀로 사는 외로움을 달래 줄 정서 지원, 약속이나 약 먹을 시간을 알려주는 기억 보조 장치들은 국내외에서 꽤 보급돼 있다. 위험한 행동, 낙상과 같은 사고를 예측하거나 발생한 사고를 가족에게 즉시 알려주는 안전 감시 기술도 만들어져 있다. 누워 있는 장애인을 안아 옮겨 줄 일꾼 같은 로봇은 머지않아 출현할 듯하다.

새로운 과학기술의 발전이 장애인·노인의 생활과 돌봄에 가져올 변화에 대한 전망은 현란하다. 지능을 가진 기술이 기능 저하의 정도를 줄이고 가족 부담을 덜어주는 획기적 방식이 될 것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기대에 들떠서 기계가 인간을 대신할 수 있다는 과학주의의 함정에 빠져서는 안 된다. 돌봄은 사람과 사람이 만나는 관계에서 비롯된다. 돌봄의 체계를 만들면서 새로운 기술을 어떻게 접맥해 활용할 것인지 적합한 방식을 찾는 것이 관건이다. 과학기술의 발전에 뒤처져서도 안 되지만 그에 사로잡혀서도 안 된다. 과거에도 현재에도, 그리고 미래에도 돌봄은 사람이 기본이고 중심이다.

(재)돌봄과 미래, 전 국민건강보험공단 이사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