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일본에서는 드라마 같은 정치적 이변이 속출하며 예측 가능한 정치로부터 일탈하고 있다. 지난 4일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다카이치 사나에 후보가 고이즈미 신지로 후보를 누르고 당선된 것이 첫 번째 이변이다. 당초 예상을 뒤엎는 그의 당선은 자민당원의 압도적인 지지 덕분이지만 아소 다로 전 총리의 막후 역할에 힘입은 바 크다. 아소는 자파 의원(46명)과 4, 5위를 달리던 고바야시 다카유키 후보와 모테기 도시미쓰 후보의 지지세력을 결집시켜 막판에 다카이치에게 왕관을 씌워주는 킹메이커로 등극했다.
지난 10일에는 26년간 연정 파트너였던 공명당(24석)이 정치자금 규제를 주장하며 자민당과 결별을 선언했다. 공명당이 다카이치에게 연립 이탈을 알린 것도 예상 밖의 이변이라 할 수 있다. 현재 자민당은 중의원에서 과반수(233석)에 한참 미달인 의석수(196석)를 지니고 있어 야당과의 협력이 필수 불가결한 상황이다. 공명당이 연정을 이탈한 상황에서 만약 입헌민주당(148석), 일본유신회(35석), 국민민주당(27석) 3개 야당이 총리지명 선거에서 연대한다면 전격적으로 정권교체가 실현된다. 입헌민주당은 개혁의 아이콘인 다마키 유이치로 국민민주당 대표를 총리 후보로 밀자는 다수파 공작에 나서고 있어 다마키 정권 출범도 개연성 있는 선택지로 급부상하고 있다.
아세안 정상회의(26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일(27~28일) 그리고 경주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30일) 등 정상외교 일정을 감안하면 총리 선거는 늦어도 다음 주에는 실시될 예정이다. 만약 다마키가 다카이치를 누르고 정권교체를 실현한다면 일본 정치의 세 번째 이변으로 기록될 것이다. 현재로선 여전히 다카이치가 총리로 당선될 가능성이 크지만 예단은 금물이다. 만약 다마키 정권이 등장한다면 한·일 관계에 주는 영향은 오히려 그다지 크지 않을 것이다. 정권교체에도 불구하고 한·일 관계는 역설적으로 지속 가능성을 담보할 것으로 예상된다.
다카이치 신정권이 수립될 경우 다소 변화가 올 수 있다. 다카이치는 ‘여자 아베’로 불릴 만큼 이념적으로는 강경보수, 우익적 성향을 드러내 왔다. 야스쿠니 신사참배, 일본군위안부, 강제동원 등의 문제에선 반동적 역사인식을 지닌 역사 수정주의자로서 면모를 보여왔다. 시마네현 ‘독도의 날’ 행사에 장관급 인사를 보내야 한다고 발언하는 한편 공원의 사슴에게 거친 행동을 보인 외국인을 언급하며 재일 외국인에 대한 배타주의적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다카이치가 정권을 잡더라도 과거 언행과는 거리를 둔 현실주의 노선으로 궤도를 수정할 것으로 전망된다. 즉, 다카이치가 한·일 관계 개선과 전략적 협력 구축이라는 지난 정권의 외교자산을 걷어차는 우를 범하지는 않을 것이다. 정치인 개인의 이념과 신조에도 불구하고 국가 진로 설정이라는 막중한 책임을 지닌 최고지도자로서의 입장은 다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다카이치는 오는 17~19일 예정된 야스쿠니 추계 예대제에 참배를 보류하기로 전격 결정했다. 그가 현실주의 외교로 방향 전환을 꾀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신호로 읽힌다.
현재 한·일 관계를 둘러싼 냉엄한 국제정치적 현실을 고려하면 한·일이 역사인식 문제로 싸울 여유가 없다. 미증유의 트럼프 관세 폭탄, 치열한 미·중 패권경쟁, 북·중·러의 정치·군사적 밀착이라는 엄중한 국제 환경은 어느 때보다 한·일의 전략적 이해와 이익의 공유를 요구하고 있다. 총재 선거에서 그도 한·일 관계의 중요성과 한·미·일의 관계 발전을 강조한 바 있다. 다카이치 신정권이 등장할 경우 일정한 우려와 경계도 요구되지만 그의 정책을 과도하게 극우적인 것으로 예단할 필요는 없다.
이원덕
국민대 교수
일본학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