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 캐리 트레이드’는 값싼 엔화를 빌려 해외 자산에 투자하는 기법이다. 1990년대 초 자산 거품 붕괴로 일본 경제가 장기 불황에 빠지자, 일본은행이 초저금리 정책을 유지해온 데서 비롯됐다. 이른바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의 산물이다.
이 투자 기법이 최근 더 기승을 부릴 태세다. 아베노믹스의 충실한 계승자로 꼽히는 다카이치 사나에가 새 총리로 선출되자, 대규모 재정 지출과 양적 완화를 재가동할 가능성이 크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기 때문이다. 엔 캐리를 빗대 다카이치 트레이드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이에 지난 9일 달러 대비 엔화 환율이 153엔을 위협하며 7개월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두 달 전 140엔대 후반에서 안정세를 보이던 엔화가 다카이치 등장 이후 연일 추락하고 있다.
이 같은 엔저 흐름은 단기적으로 일본 수출에는 호재지만, 아시아 금융시장에는 복합적인 파장을 일으킨다. 엔 캐리 확대로 국제 증시 유동성은 늘어나지만, 원화가 엔화와 동조하며 약세 흐름을 보일 가능성이 크다. 10일 원·달러 환율은 전 거래일 주간 거래 종가(1400원) 대비 21원 오른 1421원으로 지난 4월 30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시장이 원화와 엔화를 ‘위험 선호형 통화’로 묶어 평가한 데 따른 현상으로 분석된다. 하지만 이런 ‘엔저-원저’는 겉모습은 같아도 내용은 다르다. 일본은 수출 경쟁력 강화로 이익을 얻지만, 한국은 수입물가 상승과 자본유출 부담을 떠안는다. 일본 제조업이 가격 경쟁력을 회복하면 한국 수출 기업은 방어가 어려워지고, 국제 자금은 금리가 높은 미국이나 안전자산으로 쏠릴 수 있다.
다카이치 트레이드는 미국발 관세전쟁처럼 정치가 금융을 흔들고, 금융이 다시 세계 경제를 흔드는 구조다. 이는 과거 중국의 ‘근린궁핍화’즉 이웃 나라 거지 만들기 정책을 연상케 한다. 위안화 가치절하를 통해 자국 경기회복을 꾀하고 한국 상품 수입을 줄이려 했던 것인데 일본까지 따라할 경우 한국은 자칫 배수의 진을 쳐야 하는 상황에 몰릴 수도 있다.
이동훈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