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일 오전 11시 서울 서대문구 신촌 현대백화점. 신촌의 명물인 빨간 잠망경 앞에 40여 명의 젊은 여성들이 줄을 섰다. 이들의 공통점은 웹소설 ‘괴담에 떨어져도 출근을 해야 하는구나’(괴담출근)의 애독자라는 점이다.
이곳에서는 지난달 26일부터 ‘괴담출근’ 내용을 바탕으로 한 전시 ‘어둠탐사기록: 살아남은 자의 기록전’이 열리고 있다. ‘괴담출근’은 지난해 11월 카카오페이지에 공개된 작품으로, 괴담 마니아 김솔음이 팝업스토어에 갔다가 괴담 세계관에 들어가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전시장 앞에 모인 관람객 상당수는 정장 차림이었다. 소설 속 주인공 김솔음이 늘 말끔한 정장 차림의 신입사원으로 등장하기 때문이다. 정장이 전시의 비공식 드레스코드가 된 셈이다. 팬들은 주인공이 된 듯한 몰입감을 기대하며 전시장을 찾았다.
전시장 내부에는 김솔음이 마주한 도시 괴담이 그대로 구현됐다. 소설 속에서만 보던 장면이 눈앞에 펼쳐지자 팬들은 놓치지 않으려는 듯 전시장 구석구석을 살폈다.
다음 달까지 이어지는 전시는 이미 전석이 매진돼 추가 입장이 불가하다. 그럼에도 현장 대기 줄은 끊이지 않았다. 굿즈를 판매하는 팝업스토어는 현장 대기 순서대로 입장이 가능하기 때문이다. 전시 첫날에는 개장 한 시간 전부터 200여명이 몰렸다. 이날 현장에서 만난 여성은 “오늘이 세 번째 방문”이라며 “전날 밤부터 기다린 사람도 있었다. 2차 MD가 나오면 다시 찾을 계획”이라고 말했다.
‘괴담출근’은 ‘데뷔 못 하면 죽는 병 걸림’(이하 ‘데못죽’)으로 웹소설 IP 신화를 쓴 백덕수 작가의 후속작이다. 누적 조회 수 7억 건을 기록한 ‘데못죽’에 이어 ‘괴담출근’ 역시 빠른 속도로 기록을 써내려가고 있다. 공개 5일 만에 카카오페이지 역대 최단 기간 ‘밀리언페이지’(누적 관람자 100만·매출 100만 달러)를 달성했고, 지난 9일 기준 조회 수는 2억5000만건, 누적 댓글은 44만5000개에 달한다.
최근 웹소설 IP는 웹툰, 영화, 애니메이션, 게임, 굿즈로 확장하며 멀티채널 콘텐츠 생태계를 형성하고 있다. 백 작가의 성공은 웹소설 IP가 외부 채널에서도 상업적 성과를 거둘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사례로 꼽힌다. 2023년 ‘데못죽’을 바탕으로 한 팝업스토어에는 2만 명이 다녀갔고, 1인당 평균 50만원을 소비하는 기록을 세웠다. ‘괴담출근’ 역시 첫 공식 굿즈인 ‘백일몽 주식회사 입사 키트’를 1만 세트 판매해 5억원의 매출을 올렸다. 이미 웹툰 등 다양한 콘텐츠로의 제안이 이어지고 있어 관련 논의가 진행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같은 인기는 무엇보다 백 작가의 필력 덕이라는 평가가 많다. 관람객 김모(23)씨는 “흡입력 있는 문체와 입체적인 캐릭터 설정, 완벽한 떡밥 회수 능력 덕에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읽는다”고 말했다.
빠르게 트렌드가 변하는 웹소설 시장에서 매번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점도 강점으로 꼽힌다. ‘데못죽’이 아이돌 서바이벌물을 제시했다면, ‘괴담출근’은 괴담 장르를 전면에 내세워 유행을 선도했다. 매 작품마다 주독자층인 10~30대 독자가 공감할 코드가 제각각 녹아있다. 카카오엔터 관계자는 9일 “백 작가는 현대 판타지물에서는 독보적이고, 여성 팬덤 화력이 가장 센 작가”라며 “장르를 개척하며 성공 신화를 이어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김승연 기자 kit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