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달러 환율이 추석 연휴 동안 거래가 진행된 해외 시장에서 1420원대까지 치솟았다.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장기화하는 등 원화 가치에 불리한 환경이 이어지고 있어 연휴 직후 환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투자 정보 플랫폼 ‘인베스팅닷컴’에 따르면 9일 오후 3시30분 기준 역외 환율은 1421.35원이다. 전날인 8일 종가(1423.53원) 대비 2.18원 내렸지만 연휴 직전이던 3일 오전 2시(1407.0원)와 비교하면 여전히 14원 넘는 상승 폭이다. 역외 환율은 지난 5일(1407.06원)부터 8일까지 16원 넘게 올라 이틀째 1420원대를 유지하고 있다. 국내 은행 딜링룸이 문을 닫는 연휴에는 서울 외환시장의 거래가 중단된다. 다만 뉴욕·싱가포르·홍콩 등 역외 시장에서 원화 기반 차액결제선물환(NDF) 거래가 이어진다.
원·달러 환율은 연휴 이후에도 상승 압력이 강할 전망이다. 우선 관세협상 과정에서 불거진 대규모 대미 투자 요구가 해소되지 않고 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3500억 달러를 ‘선불’로 지급하라고 요구한 가운데 통화 스와프 체결에도 난항이 이어지면서 원화 약세 우려가 가중되는 모습이다. 이정환 한양대 경제금융대학 교수는 “(역외 환율 추세가) 실제로 반영될 가능성이 상당히 있다”면서 “다른 화폐보다도 원화가 유독 약세를 보이는 데는 관세협상의 영향이 큰 듯 보인다”고 말했다.
최근 급격히 떨어진 엔화 가치 역시 원·달러 환율을 추가로 끌어올릴 요소로 꼽힌다. 국제 금융시장에서 원화와 엔화가 통상 ‘한몸’처럼 움직인다. 엔·달러 환율은 지난 8일 기준 152.69엔으로 2월 13일 이후 7개월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대규모 양적완화를 공언해온 다카이치 사나에 신임 자민당 총재가 일본의 차기 총리로 떠오른 여파다.
이에 일각에서는 연휴가 끝나자마자 환율이 15원 가까이 뛰었던 지난 설 때의 아찔한 상황이 되풀이될 수 있다고 우려한다. 6일간의 연휴를 마치고 서울 외환시장이 다시 열린 지난 1월 31일 환율은 24일 종가 대비 14.7원 오른 1446.0원으로 개장해 한때 1450원대까지 진입했다.
설상가상으로 그동안 환율이 급등할 때마다 요긴하게 활용했던 ‘국민연금 환헤지’ 카드도 예전처럼 적극적으로 활용하기는 어려워진 상황이다. 그동안 국민연금은 환율이 일정 수준 이상 오를 때마다 한국은행과의 외환 스와프를 통해 보유한 해외 자산의 일부를 매도해 원화 가치를 방어해 왔다.
미국은 지난 6월 환율보고서에 이를 언급하는 등 최근 국민연금의 ‘환율 방어’ 기능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지난 1일 발표된 한·미 환율 합의문에도 “정부투자기관의 해외투자는 위험조정과 투자 다변화 목적에 따라 이뤄져야 하며 경쟁적 목적의 환율을 목표로 하지 않는다”는 구절이 실렸다.
다만 당장은 미국이 의도적인 원화 평가 절하를 방지하는 데 초점을 맞추고 있어 국민연금 환헤지를 서둘러 막으려 할 가능성은 낮다는 평가다.
이의재 기자 sentinel@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