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경의 열매] 심재덕 (7) 신체적 장애도 내겐 축복… 달려서 다시 숨을 얻다

입력 2025-10-13 03:04
2003년 실시한 체력진단에서 심 선수의 폐활량이 동 나이 기준 69.5%를 기록한 검사지. 아래 사진은 꾸준한 달리기로 심 선수의 노력성 폐활량이 2009년 99%에서 2013년에는 121%로 향상됐음을 보여주는 폐기능 검사지. 심 선수 제공

내가 달리기를 멈추지 않은 첫 번째 이유는 ‘상(賞)’이었다. 살면서 공부로 상을 받아본 적은 없었다. 하지만 살기 위해 달렸고, 죽을 만큼 땀 흘린 끝에 처음으로 1등을 했다. 그때 받은 상장은 날카롭고 예리한 자신감의 칼이 되어 내 손에 쥐어졌다. 만약 처음에 1등이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달리기를 계속해오지 못했을 것이다.

달리면 달릴수록 숨은 더 편안해졌다. 달리기를 시작한 이후로는 호흡 문제로 병원을 찾은 적이 없다. 앞으로도 그럴 일은 없을 것 같다. 기관지확장증 때문에 달리기를 시작했다고 하면 같은 질환을 앓는 사람들이 종종 묻는다. “정말 달려도 괜찮나요. 숨 쉬는 데 문제가 없나요?” 나는 의사가 아니기에 정확한 답을 해줄 수는 없다. 하지만 분명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결국 선택은 본인에게 달려 있다는 사실이다. 처음엔 걷는 것조차 버거울 수 있지만 한 걸음씩 내딛다 보면 몸이 스스로 알려준다. 달리기가 숨을 살린다는 것을. 몸을 움직이면 신진대사가 활발해지고 근골격과 심장이 단련된다. 다른 기관들도 깨어난다. 신기하게도 우리 몸은 쓸수록 힘이 붙고 달릴수록 한계를 넘어서려 한다.

내 키는 163㎝, 몸무게는 58㎏다. 통통하고 작은 체구에 굵은 허벅지를 한때 원망했다. 그러나 울트라 러너에게 튼튼한 허벅지는 퍼내도 마르지 않는 샘과 같다. 지치지 않는 힘의 원천이다. 약한 몸을 버티게 한 건 허벅지의 힘이었다.

달리기를 시작한 뒤 정상적인 생활이 가능했지만 2003년 만 34세에 받은 체력검사에서 폐활량은 또래 평균의 69.5%에 불과했다. ‘이런 몸으로 운동할 수 있을까’하는 의구심이 들 법도 했다. 그러나 42.195㎞를 완주하고도 잠시 숨을 고른 뒤 한 번 더 뛸 수 있을 만큼 회복이 빨랐다. 꾸준히 달려온 덕분인지 ‘노력성 폐활량’은 놀라울 정도로 향상됐다. 2009년 99%였던 수치는 2013년에는 121% 이상으로 높아졌다.

나는 기관지확장증뿐만 아니라 후각 장애도 앓고 있다. 20여년 전 잠수함 1차 건조 작업을 하면서 후각이 점점 희미해졌다. 수심 250m까지 잠항하는 잠수함은 방음과 보온을 위해 타원형 격벽에 하드폼을 부착한 뒤, FRP 수지를 바르는 과정을 거쳐 만들어진다. 작업 중 방독 마스크를 썼지만 본드 아세톤 시너 리무버 등 각종 화학 약품에 지속적으로 노출됐다. 언젠가는 회복되리라 믿었지만 망가진 후각은 끝내 돌아오지 않았다.

2020년 휘어진 비중격을 바로잡기 위해 병원을 찾았다. 의사는 후각 회복 치료도 함께 권했다. 그러나 검사 결과는 참담했다. 46개의 샘플 중 단 하나의 향도 구별하지 못했다. 음식 냄새도 꽃향기도 사라진 삶이었다. 그런데도 병약하게 태어난 내가 지금까지 살아 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감사했다. 하나님이 사도 바울에게 육체의 가시를 주셨듯이 나 역시 약한 부분으로 인해 남들보다 더 큰 노력과 땀을 흘려야 했고, 그 덕분에 여기까지 달려올 수 있었다. 만약 하나님께서 나에게 많은 능력과 특별한 재주를 주셨다면 나는 게으름과 교만함에 빠져 넘어졌을지도 모른다.

조선소에서 일했던 것은 가난을 벗어나기 위한 내 선택이자 운명이었다. 나는 주어진 모든 것을 축복이라 여긴다. 병을 통해 달리기를 만났고, 달리기를 통해 다시 숨을 얻었다. 오늘도 그 숨이 내어준 길 위를 불의 전차처럼 달리고 있다.

정리=손동준 기자 sdj@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