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반도체 업계의 ‘슈퍼사이클’(장기 호황) 조짐이 뚜렷해지고 있다. 글로벌 빅테크의 대규모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투자가 본격화하면서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가 급증하는 가운데 D램 가격까지 뛰면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실적이 우상향 에스컬레이터에 올라탔다는 관측이 나온다.
9일 반도체 업계에 따르면 글로벌 D램 공급 부족 현상이 심화하면서 D램 가격 상승세가 지속되고 있다. 시장조사 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기준 글로벌 D램 공급자 평균 재고는 3.3주로 역대 최저치를 기록했다.
평균 재고가 3.3주라는 건 지금까지 생산해놓은 D램 수량으로 시장 수요에 대응할 수 있는 기간이 약 23일에 불과할 정도로 물량이 달린다는 뜻이다. 업계에서 건전한 재고 수준으로 여겨지는 6~8주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상황이다. 특히 SK하이닉스와 마이크론은 평균 재고가 2주에 불과했고 삼성전자는 6주를 기록했다.
범용 D램(DDR4 8Gb 기준) 가격도 지난 1월 1.4달러에서 지난달 6.3달러까지 꾸준히 올랐다. 구형 D램 가격이 6달러를 넘은 것은 2019년 1월 이후 6년 8개월 만이다. 주요 메모리 업체들이 HBM 생산에 집중하고 구형 D램 생산을 줄이면서 ‘공급자 우위’ 양상이 굳어진 것이다.
HBM 수요 역시 대폭 확대될 전망이다. 최근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는 챗GPT 개발사 오픈AI의 초대형 AI 인프라 구축 사업 ‘스타게이트 프로젝트’에 전략적 파트너로 합류했다. 샘 올트먼 오픈AI 대표는 지난 1일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최태원 SK그룹 회장과 만나 웨이퍼 기준 월 최대 90만장에 달하는 고성능 D램 공급량을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양사의 D램 생산능력 합계(월 120만장)를 고려하면 막대한 규모인 것이다.
지난 6일 엔비디아의 경쟁사 AMD가 2029년까지 오픈AI에 총 6기가와트(GW) 규모의 AI 가속기를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한 것 역시 국내 반도체 업계에 호재가 될 것이란 평가가 나온다. AI 가속기는 AI의 학습·추론에 특화한 반도체 패키지다. 특히 삼성전자는 그간 AMD 주력 AI 가속기인 ‘MI350’ 시리즈에 HBM3E 12단 제품을 공급해왔다. 오픈AI에 제공할 AI 가속기 ‘MI450’용 HBM4 납품에도 삼성전자가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 나온다.
삼성전자·SK하이닉스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금융정보업체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삼성전자 3분기 영업이익 추정치는 한 달 전보다 12% 오른 9조8164억원, SK하이닉스는 5.1% 늘어난 10조8016억원으로 집계됐다. 김동원 KB증권 연구원은 “AI 서버 집중 투자로 지연됐던 일반 서버 교체 주기를 고려할 때 D램과 낸드 수요 증가는 내년 하반기까지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며 “특히 삼성전자·SK하이닉스는 AI 데이터센터 중심을 넘어 메모리 수요가 다변화하며 본격적인 이익 성장 궤도에 진입할 것”이라고 평가했다.
양윤선 기자 su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