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나라 밖에서 들려온 소식은 우리 경제에 그림자를 드리우는 것이 많았다. 한국 철강의 최대 수출처인 유럽연합이 철강 관세를 두 배(25%→50%)로 높이고 무관세 쿼터를 축소키로 했다. 미국이 지난 3월부터 50% 철강 관세를 부과하는 마당에 유럽마저 역내 철강업계 보호를 내세워 같은 조치를 꺼내면서 중국의 저가 공세에 시달려온 한국 철강업계는 삼중고에 처했다. 중국 상무부는 희토류 수출 통제를 한층 강화하고 나섰다. 통제 품목을 대폭 늘렸고, 이들을 함유·조합·혼합한 소재까지 수출 허가를 받도록 했으며, 반도체 생산과 인공지능 개발용 희토류 수출도 개별 심사를 통해 허가 여부를 결정키로 했다. 세계 희토류의 70%를 생산하는 중국이 미국의 관세 전쟁에 맞서 지난 4월 단행한 ‘희토류 무기화’의 고삐를 더욱 틀어쥔 것이다.
유럽과 중국의 행보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의 보호무역 기조가 미국을 넘어 확산하고 있음을 말해준다. 한국은 그 진앙인 미국과의 관세 협상에서도 교착 국면에 갇혀 있다. 연휴에도 협상을 벌이고 대통령실이 연일 회의를 열었지만 돌파구가 보이지 않는 상황이다.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회의에 맞춰 방한할 트럼프가 한국 체류 일정을 매우 짧게 잡으려는 것도 ‘압박용’이란 해석까지 나온다. 이런 상황에서 일본은 강경 보수 다카이치 사나에 의원이 차기 총리직을 예약했다. 이재명 대통령이 이시바 시게루 총리와 대미 협상 전략을 공유하던 한·일 관계에 불확실성이 커졌다. 북한의 노동당 창건 80주년 열병식에는 중국과 러시아 2인자가 나란히 참석한다. 재차 과시할 북·중·러 연대는 이재명정부 실용외교의 운신을 더욱 어렵게 할 수 있다.
미국 중국 러시아 일본 북한에 유럽까지 나라 밖에서 이렇게 악재가 겹겹이 쌓인 연휴의 끝자락에 국내 정치권이 꺼낸 말은 상황을 더욱 암울하게 했다. ‘추석 민심’을 들었다면서 여당은 여전히 “내란 종식”을, 야당은 으레 “정부 규탄”을 키워드로 들고 나왔다. 연휴 내내 TV 예능프로그램을 놓고 공방을 벌이더니, 일상 복귀와 함께 시작될 국회에서도 대결과 정쟁을 계속하겠다는 아전인수의 민심 해석이다.
정작 유럽의 철강 관세로 더욱 시급해진 ‘K-스틸법’은 여야 어느 쪽도 입에 올리지 않았다. 미국의 철강 관세에 기간산업을 지원하려 발의된 이 법안은 유럽마저 철강 관세를 선언한 지금까지 국회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소위원회에 계류돼 있다. 나라의 경제·외교·안보를 위협하며 속출하는 해외 악재보다, 그것을 중요한 의제로 다루지 않는 국내 정치가 더 큰 악재일 수 있다. 이번 정기국회의 후반부마저 정쟁에 매몰돼 허송한다면 한국의 점증하는 위기는 갈수록 현실로 닥쳐오게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