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빛과 소금] 눈을 떠요, 아프리카

입력 2025-10-11 00:33

아프리카 초원 위로 서서히 태양이 내려앉는다. 하늘 향해 아우성치듯 서 있는 바오밥나무 사이에서 눈동자가 더 까만 아이들이 대형 BMW 오토바이를 쫓아온다. 캄캄한 밤엔 광활한 벌판 위로 더 광대한 우주가 별빛으로 쏟아져 내린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우간다 카올로 마을까지 아프리카 9개국 8000여㎞를 오토바이로 종단하며 거점 병원에서 무료 개안 수술을 진행한 사단법인 비전케어 이사장 김동해 명동성모안과 원장이 그의 책 ‘눈을 떠요, 아프리카’(홍성사)에 남긴 표현이다.

김 원장은 2002년 파키스탄에서 첫 의료봉사를 시작한다. 한 해 전인 9·11테러 당시 그는 미국 뉴욕 쌍둥이빌딩을 여객기로 폭파한 무슬림 테러리스트들의 적대감에 충격을 받았다. 기독교인으로서 어떻게 하면 이들에게 예수님의 사랑을 전할 수 있을까 고민하다가 백내장 수술을 떠올렸다. 아프리카, 아시아를 비롯한 저개발 국가엔 예방접종 부족 등으로 선천성 백내장 환자가 많다. 백내장은 20~30분의 짧은 수술만 하면 문제없이 세상을 다시 볼 수 있다. 누군가에 의지해 암흑 속에서 지내던 환자들이 숙련되고 정제된 수술로 인공 수정체를 넣은 뒤에는 앞을 다시 보게 돼 기쁨의 눈물을 흘리며 홀로 서곤 한다. 하지만 아프리카에는 여전히 인구 100만명당 안과의사가 1명뿐이고, 병원도 대도시에만 집중돼 있어 대부분 의료진을 만날 기회도 없이 실명하고 만다. 말라리아와 에이즈엔 세계 각국의 원조가 몰리지만 안과 치과 정형외과 등엔 여전히 의료 지원이 태부족인 게 아프리카의 현실이다.

김 원장은 2005년 국제 실명 구호 NGO인 비전케어를 민간단체로 등록한다. 이후 20년간 안과 의사를 비롯한 국내외 의료진과 자원봉사자 5800여명과 함께 40개국에서 23만명의 환자에게 수술과 진료 등을 통해 빛을 선물해 왔다. 그는 평생 휴가를 반납하고 사역지를 찾았으며 사비로 장비와 인력을 마련하곤 했다. 연중 3분의 1 이상을 저개발 국가에서 보내며 실로암의 기적을 만들어 왔다. 이런 공로로 김 원장은 2025 삼성호암상 사회봉사부문을 수상했다. 호암재단은 수상 이유로 “파키스탄 몽골 에티오피아 탄자니아 등 11개국에 비전케어 지부를 설립하고 현지 의료인 양성을 위한 전문 훈련 프로그램 운영, 의료시설 개선 및 장비 지원 등을 통해 현지 주도의 지속 가능한 의료 체계를 구축했다”고 밝혔다.

김 원장은 지난 7~8월에도 10년 전 오토바이 종단여행 루트를 되짚어가며 아프리카에서 백내장 수술 등을 진행하고 돌아왔다. 귀국 직후 김 원장은 국민일보와 만나 한국 교회가 해외 선교를 하며 주의해야 할 지점들을 설명했다. 내가 좋아하는 것을 상대도 좋아하리라는 착각, 아프리카 하면 종족 간 잔인한 내전과 미개함과 게으름을 먼저 떠올리는 선입견, 남을 돕는다고 하면서 특히 자존심이 센 아프리카 사람들에게 상처를 입히는 행위, 아무리 선한 일도 해당 국가의 관례에 어긋나면 안 되기에 의료행위 임시면허 등 절차를 철저히 준수해야 하는 점 등을 나열했다. 김 원장은 “현지인 의사를 교육하고 현지 병원을 도와 의료 시스템을 구축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덧붙여 아프리카 동부에 비해 서부는 아직 열악한 곳이 많아 마음의 짐으로 남아 있다고도 했다.

서부 아프리카 모리타니아 등지에서 10여년간 백내장 수술 등을 진행한 비전케어 운영이사 정한욱 고창 우리안과 원장 역시 동석한 김 원장의 의견에 동의했다. 정 원장은 2023년 ‘믿음을 묻는 딸에게, 아빠가’(정은문고)를 저술해 그해 국민일보 올해 최고의 책 저자로 선정된 바 있다. 안과 전문의로서 아프리카에서 실로암의 기적을 선사하지만 오히려 자신이 받는 은혜가 더 크다고 정 원장은 고백했다. 십자가에 못 박혀 죽기까지 사랑한 예수님과 더불어 남을 위한 삶을 통해서만 열리는 초월을 경험하는 시간이 무엇보다 소중하다고 전한다. 아프리카도 우리도 새롭게 눈을 뜨고 함께 바라보아야 할 시점이다.

우성규 종교부장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