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 독버섯과 균

입력 2025-10-10 00:37

“(야당이) 독버섯처럼 고개를 쳐들고 올라오고 있다” “(여당이) 대한민국을 좀먹는 균이 되고 있다”

오랜 불경기와 급등하는 부동산 가격에 지쳐 있던 국민이 오랜만에 한자리에 모여 앉았을 추석 연휴에 ‘선출된 권력’인 국회의원들이 같은 날 주고받은 날 선 말이다. 전자는 박수현 더불어민주당 수석대변인의 기자간담회 발언이고, 후자는 박성훈 국민의힘 수석대변인의 논평인데, 한가위 밥상에 오른 말 치고는 너무나 섬뜩하고 무자비하다.

정치권이 반으로 갈라져 싸운 것이 어제오늘 일이 아니지만 명절 연휴까지 이어진 ‘말싸움’은 지켜보는 이들을 매우 심란하게 했다. 최근 여야 간 난타전의 소재는 이재명 대통령의 예능 프로그램 ‘냉장고를 부탁해’ 출연이다. 이 대통령 부부는 지난달 28일 이 음식 관련 방송을 녹화했는데, 이날이 공교롭게도 행정부 시스템을 마비시킨 국가정보자원관리원 화재 발생 사흘째 되는 날이었다.

이를 놓고 야당은 대통령의 ‘잃어버린 48시간’이라며 총공세를 펼쳤고, 발끈한 대통령실은 화재 발생 이후 상황을 시간 단위로 공개하며 맞불을 놨다. 공개된 타임라인을 보면 이 대통령이 화재 복구 상황을 챙기지 않았다고 비판하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 이쯤 되면 공방이 정리될 법도 한데, 추석 여론을 의식했기 때문인지 여야는 연휴 마지막날까지도 ‘냉장고 전쟁’을 벌였다. 급기야 주진우 국민의힘 의원은 6일 강유정 대통령실 대변인과 박수현 수석대변인을, 민주당은 다음 날 장동혁 국민의힘 대표를 각각 허위사실 적시에 의한 명예훼손 혐의로 경찰에 고발하기에 이르렀다.

한 여권 관계자는 “야당도 자신들이 얼마 전까지 집권세력이었는데, 대통령이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화재 복구 상황에서 손을 놓을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알았을 것”이라며 “결국 추석 명절을 앞두고 여론전을 무리하게 펼치다 자충수를 둔 셈”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쪽에서 세게 나오는 만큼 우리도 세게 나가지 않을 수 없지 않으냐”고 덧붙였다.

한가위 밥상의 또 다른 소재는 김현지 대통령실 부속실장의 국회 국정감사 출석 여부였다. 여야는 이를 놓고 벌써 한 달 가까이 싸우고 있는데, 지겨운 공방도 끝이 보이지 않는다. 결국 김 실장이 “여야가 합의해 국감 증인으로 채택한다면 출석하겠다”는 입장을 밝혔지만 야당의 공세는 그치지 않았다.

여야 간 논쟁이 한창이던 때 단행된 대통령실 인사도 뒷맛이 그리 개운치 않다. 대통령실은 지난달 29일 대통령실 조직 및 인사 개편을 단행하며 김 실장을 총무비서관에서 부속실장으로 이동시켰다. 대통령실은 소통 강화를 위해 부속실장이었던 김남준 실장을 공동대변인으로 세우면서 발생한 자연스러운 인사이동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국감에 출석해 온 총무비서관과 달리 부속실장은 국감에 출석하지 않는 것이 관례라 야당은 지금까지도 ‘국감 출석 회피용 인사’라며 비판하고 있다. 여권 내부에서도 불필요한 빌미를 준 것 아니냐는 목소리가 수면 아래서 나온다. 따지고 보면 민생에 하등 영향이 없는 이 소모적 논쟁은 결국 올해 국감이 끝날 때까지 계속될 듯하다.

마음 기댈 곳 없던 일상에 찾아온 황금연휴였지만 정치권은 온통 서로를 향한 적의만 가득했다. 여야는 서로를 향해 ‘독버섯’과 ‘좀먹는 균’이라며 쏘아붙였지만 정작 국민 마음속 독버섯을 자라게 하고, 국민의 마음을 갉아먹는 균은 그들의 말이 아니었나 싶다.

최승욱 정치부 차장 applesu@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