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집 활짝 연 성도, 외국인 유학생에 명절 밥상으로 환대하다

입력 2025-10-10 03:00
남서울교회 정선희 권사 식구들과 중앙대 유학생들이 지난 7일 경기도 용인의 정 권사 자택에서 추석 음식을 나누고 있다. 남서울교회 제공

부슬비가 내린 지난 7일 경기도 용인의 한 가정. 소갈비찜 전복구이 송편 등 명절 음식이 정갈하게 놓인 밥상에서 서툰 한국어와 웃음소리가 뒤섞였다. 식탁에 둘러앉은 이들은 중국 베트남 멕시코 가나에서 온 청년들. 식사와 장소를 제공한 이는 한국인 부부였다. 해외여행도 갈 수 있는 황금연휴, 오랜만에 친척을 만나야 할 추석에 부부는 왜 외국 젊은이들을 집에 초대했을까.

부부가 유학생들을 초청하기로 마음먹은 건 지난달 중순에 올라온 교회 주보를 통해서였다. 서울 남서울교회(화종부 목사)에 출석하는 정선희 권사는 ‘추석 연휴 기간인 6~9일 중 하루, 중앙대 외국인 유학생을 가정에 초대할 가정을 모집한다’는 교회 소식을 본 뒤 곧바로 ‘우리 집이 해야겠다’고 결심했다. 정 권사는 “내 집을 이웃에게 활짝 열고 교제하는 게 성도의 삶”이라며 “남편도 흔쾌히 찬성했고, ‘엄마 아빠처럼 나이 많은 사람만 있으면 유학생들이 우리 집에 와서 지루해할 것’이란 말에 대학생인 아들도 기분 좋게 승낙했다”고 말했다. 중앙대 유학생들을 집으로 초청하는 가정은 정 권사네 외에도 세 가정이 더 있다.

짧게는 한 달 남짓, 길게는 일년 반 이상을 한국에서 생활했지만 유학생들은 이런 환대를 처음 받아본다고 했다. 베트남에서 온 웬티하안(21)씨는 중앙대에서 경영학을 공부하고 있다. 그는 “아무래도 한국에선 대인관계가 고향만큼 넓지 않다”며 “여기선 취미 생활도 혼자서 할 수 있는 등산이나 독서 같은 것들”이라고 말했다. 지난해부터 혼자 자취를 하고 있다는 그는 “식사를 마친 뒤 다 같이 조물조물 약밥을 만들었던 시간을 잊을 수 없을 것 같다”고 했다. 한국 드라마 ‘대장금’을 보고 중국에서 한국문화학을 전공 중인 동려아(가명·21)씨는 “자취방으로 돌아가는 길에 부모님께 영상통화로 안부 연락을 드렸다”며 “부모님께서도 ‘한국 연휴 기간에 혼자 있지 않고 잘 지내는 것 같다’며 좋아하셨다”고 전했다.

인천 해인교회에서 열린 ㈔인천내일을여는집 '추석맞이 거리 노숙인 초청 잔치' 현장. 인천내일을여는집 제공

귀향 행렬이 이어진 도심 반대편에서 가족 없이 지내는 이들과 명절을 함께 쇤 성도들은 이밖에도 많았다. 추석 연휴를 앞둔 지난달 30일 인천 해인교회(김영선 목사) 앞. 이날 교회 마당엔 갓 지은 밥 냄새와 장작불 위로 고기 굽는 냄새가 피어올랐다. 파란색 빨간색 천막 아래 식탁 앞에 삼삼오오 모여든 이들은 모두 홀몸으로 사는 시민들. 노숙인, 고시원 거주자 등이었다. 차례로 줄을 선 이들은 바비큐와 소불고기, 잡채, 모둠전 등 명절 음식을 받아들고 주최 측에 감사 인사를 건넸다.

식사를 준비하는 곳은 ㈔인천내일을여는집(이사장 이준모)으로 이날 행사는 ‘추석맞이 거리 노숙인 초청 잔치’였다. 추석 연휴 동안 거리에서 지내는 이들에게 잠시라도 따뜻한 밥 한 끼와 온정을 전하고 싶었다고 했다. 이날 식사 자리에선 첼리스트 백승화 미라보 대표와 색소포니스트 김삼식씨가 연주를 펼쳤고, 참석자 165명에게 의류도 지원됐다. ㈔인천내일을여는집의 추석맞이 행사는 지난달 30일과 지난 6일, 8일 사흘간 인천 전역에서 진행됐다.

부산 수영로교회(이규현 목사)는 ‘S(수영로)라이더’ 사역을 통해 이주민과 다문화·탈북민 가정, 홀몸노인 등 소외 이웃에게 명절 선물을 전하고 있다. 2020년 추석에 처음 시작된 S라이더는 수영로교회 성도들이 명절 음식과 선물을 직접 준비해 이웃에게 배달까지 하는 활동이다. 배달에 나서는 성도는 100여명, 라이더들은 부산을 비롯해 경남 양산과 김해까지 흩어져 명절마다 인사를 전하고 있다. 올 추석 배달은 지난 4일 진행됐다.

경기도 수원제일교회(김근영 목사)는 지난 4일 교회 인근 탈북민 가정을 집집마다 찾아 명절 선물과 난방비를 지원했다. 지원 대상은 탈북민 정착 지원 기관인 하나원과 교인들을 통해 찾았다. 교회 통일선교부 팀장인 박승배 안수집사는 “북에 남은 가족들을 그리워하며 홀로 명절을 보내는 탈북민이 적지 않다”며 “명절에 더 그리운 곳이 고향이다. 우리가 전하는 작은 관심이 이분들께 위로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현성 박윤서 기자, 인천=김동규 기자 sag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