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설교] 자기 십자가, 지고

입력 2025-10-13 03:06

후안 카를로스 오르티즈 목사의 저서 ‘제자입니까?’와 카일 아이들먼 목사의 ‘팬인가, 제자인가’에서는 단순히 예수를 좋아하는 팬(Fan)과 온전히 예수를 따르고 그 가르침을 실천하는 제자(Disciple)를 구분합니다. 팬은 예수를 멀리서 바라보는 사람, 예수와 어느 정도 거리를 유지하며 자신만의 안락한 신앙생활을 추구하는 사람, 예수의 말씀을 감동적으로 듣고 찬양하며 축복을 원하지만 함께 걷지는 않는 사람 등이라고 말입니다. 반면 제자는 복음으로 자신을 부인하고 세상의 유혹을 이겨내며 살아가는 사람, 예수를 닮아가려고 몸부림치는 사람, 삶에서 예배를 살아내며 세상을 변화시키는 사명을 감당하는 사람이라고 합니다.

그러면 예수님은 누구를 제자라 하십니까. “자기 십자가를 지고 가는 자”(눅 14:27)입니다. 주목할 것은 ‘자기 십자가’와 ‘지고’입니다. 기독교의 상징은 십자가입니다. 십자가는 반드시 종과 횡이 만나야 합니다. 따로 떨어져 있거나 하나만 있어선 안 됩니다. 하나님이 인간에게 하신 첫 번째 질문인 “네가 어디 있느냐”(창 3:9)는 하나님과 나와의 실존적 관계의 자리입니다. 매 순간 이 자리를 점검하는 것이 십자가의 종(縱)입니다. 십자가의 횡(橫)은 나와 이웃, 세상과의 관계를 뜻합니다.

예수님은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에서 ‘누가 우리의 이웃인가’를 묻습니다. 우리의 이웃은 우리의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항상 어디서든 존재해 왔고 존재해 있고 존재할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이들에게 ‘누가 이웃이 되어주었는가’입니다. 예수님은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눅 10:37) 말씀하십니다. 요즘은 십자가의 종만을 혹은 십자가의 횡만을 주장하는 ‘따로 부류’들을 심심치 않게 봅니다. 십자가는 종과 횡이 반드시 만나야 합니다. 예수는 하나님의 뜻을 끝까지 묻고(종) 그 자리(횡)에서 ‘자기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오늘날 세상이 보고 싶어하는 그리스도인의 모습은 십자가를 바라보는 사람이 아닙니다. 입만 베드로인 사람들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제자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치열하게 사는 사람들입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이런 제자들을 통해 하나님 나라를 기대하시고 꿈꾸십니다.

지난날 교회가 사회를 걱정했다면 요즘은 사회가 교회를 근심하며 외면합니다. 개신교인이 점점 줄고 있고 익명의 크리스천들도 점점 늘어납니다. 그 중엔 감수성이 예민한 중·고등학생들과 대학생 청년 청장년층이 주를 이룬다고 합니다.

이제는 과연 기성세대 교인들인 우리가 예수님의 팬이 아닌 제자들의 모습을 살아왔고 살고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순교 증후군’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나를 마구잡이로 흔드시는 주님의 말씀, 메시지를 가로막는 것은 다름 아닌 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내가 더 많은 기도 예배 봉사 헌신 선교 전도 사회적 약자들에 대한 책임 등등을 실천해야 하는 것이 두렵기 때문에 이를 무의식적으로 막고 있다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도 예수의 팬에서 예수의 제자로 변화돼 가야 하는 나와 교회를 무의식적으로 막고 있는 것은 아닌가를 반문해 봐야 하겠습니다. 오래 전 화두가 됐던 ‘당신은 팬입니까 제자입니까’를 다시 끄집어내 봅니다. ‘자기 십자가를 지지’ 않고 부활의 영광만을 바라보는 헛된 자들에게 물어보고 싶습니다.

은희곤 목사(평화드림포럼 대표)

◇은희곤 목사는 평화드림포럼과 미등록아동지원센터 대표입니다. 평화드림포럼은 한반도 평화를 위해, 미등록아동지원센터는 미등록아동들의 인권을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