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무대에 오른 자이니치 삶, 日 관객 사로잡다

입력 2025-10-11 00:06
지난 7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개막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의 장면들. 지난 2008년 신국립극장과 한국 예술의전당 공동제작으로 초연된 작품은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다시 공연된다. 일본 신국립극장 제공

지난 7일 일본 도쿄 신국립극장 소극장. 올해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을 기념해 재일교포 극작가 겸 연출가 정의신이 쓰고 연출한 연극 ‘야끼니꾸 드래곤’이 올랐다. 이 작품은 일본 신국립극장과 서울 예술의전당의 공동제작으로 2008년 초연됐다. 이후 2011년 일본과 한국에서 재연된 데 이어 2016년 일본에서 세 번째 공연이 이어졌다.

올해 다시 무대에 오른 ‘야끼니꾸 드래곤’은 1969∼71년 일본 오사카 간사이공항 근처 자이니치 마을에서 곱창집을 운영하는 용길네 가족의 이야기를 그린다. 한국의 재일교포를 지칭하는 ‘자이니치’(在日)는 일본에서 한국적과 조선적(남북 분단 이전 조선반도 출신이라는 뜻으로 사실상 무국적)을 구분하지 않고 일본에 거주하는 한반도 출신을 가리키는 ‘자이니치 코리안’의 줄임말이다.

태평양전쟁에서 팔을 잃은 용길은 죽은 전처소생의 두 딸과 재혼한 아내 영순, 영순이 데려온 딸 그리고 부부 사이에 새로 태어난 아들과 함께 꿋꿋하게 살아간다. 하지만 일본 사회의 차별 속에 세 딸은 각각 그들의 배우자와 함께 한국과 북한으로 떠나거나 일본에 남는 선택을 한다. 그리고 아들은 학교에서 집단 따돌림을 견디지 못해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자이니치 마을은 일본 정부의 정책에 따라 강제 철거된다.

초연 당시 ‘야끼니꾸 드래곤’은 한일 연극 교류와 합작의 바람직한 모델로 평가받으며 양국에서 연극상을 휩쓸었다. 용길 역의 신철진과 영순 역의 고수희는 한국 배우로는 처음으로 일본 공연계 최고 권위를 가진 요미우리 연극대상 남우상과 여우상을 받는 기록도 남겼다. 또 초연을 비롯해 재연, 삼연 때마다 양국에서 티켓 예매 전쟁이 벌어질 정도로 큰 화제를 모았다. 공연마다 관객들이 자이니치의 신산한 삶에 눈시울을 붉히고 뜨거운 박수를 보내는 장면이 목격됐다.

이번 무대에는 초 재연 멤버였던 배우 고수희, 박수영, 김문식, 지바 데쓰야와 삼연까지 모두 출연한 악사 겸 앙상블 박승철이 다시 함께했다. 여기에 이번에 새롭게 캐스팅된 양국 배우들이 호흡을 맞췄다. 고수희(49)는 “14년 만에 다시 출연하지만, 몸이 기억하고 있어 연기에 어려움은 없었다. 초연과 재연 때는 엄마 역할을 100% 이해하기엔 어렸는데, 이제는 나이와 경험이 쌓여 좀 더 자연스러워졌을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이번에 합류한 큰딸 역의 지순(본명 김지순)은 “자이니치 배우로서 이 작품에 출연하게 돼 정말 특별하다. 극 중 이야기는 돌아가신 할아버지가 어린 시절 들려주셨던 이야기를 떠올리게 만든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날 개막 공연에서 객석을 가득 채운 일본 관객들은 웃다가 울다가를 반복했다. 막이 내린 뒤엔 기립박수가 쏟아졌다. 공연에 앞서 신국립극장이 특별히 로비에 마련한 전통 색동 지갑 등 기념품과 김밥, 전, 잡채로 구성된 도시락과 막걸리 판매도 관객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었다. 올해는 한일 국교 정상화 60주년 기념 공연이라는 의미가 더해진 만큼 일본 방송사들이 공연 전후 관객들을 인터뷰하는 모습도 눈에 띄었다.

극장에서 만난 하마다 모토코 일본 마이니치신문 논설위원은 “‘야끼니꾸 드래곤’을 볼 때마다 울게 된다. 이 작품은 완성도는 물론이고 일본과 한국에서 잘 알려지지 않았던 자이니치의 삶을 제대로 알려줬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말했다. 우치다 요이치 연극평론가도 “정의신의 작품 중에서도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생각한다. 특히 자이니치인 정의신의 인생이 깊게 담겨 있는 대사의 힘이 정말 크다”고 평했다.

‘야끼니꾸 드래곤’은 오는 27일까지 신국립극장 소극장에서 공연된 이후 11월 14~23일 한국 예술의전당에서 공연된다. 이어 12월 6~7일 기타큐슈, 12월 12~13일 도야마를 거쳐 12월 19~21일 신국립극장 중극장에서 파이널 공연을 펼친다.

도쿄=장지영 선임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