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석 연휴 글로벌 자산 폭주
동학개미 기대감 커지지만
주가 흐름과 다른 원화 하락세
우리 경제의 불안요소 부각
환율은 경제 기초체력 지표
건전한 경제회복 위해서라도
재정·구조개혁 매진해야
동학개미 기대감 커지지만
주가 흐름과 다른 원화 하락세
우리 경제의 불안요소 부각
환율은 경제 기초체력 지표
건전한 경제회복 위해서라도
재정·구조개혁 매진해야
추석 연휴 직전 코스피지수가 전인미답의 3500선을 돌파했다. 그런데 황금연휴 기간 문을 연 글로벌 자본시장 상황을 보면 코스피는 애교 수준이다. 일본 닛케이지수는 하루에 4.75%나 폭등하며 사상 최고치를 경신했고 미국 S&P 500지수도 자고 일어나면 기록이 깨지기 일쑤다. 금도 온스당 4000달러 돌파라는 신기원을 열었다.
안전자산이고 위험자산이고 모조리 뜨겁다. 올해 주요국 중 주가 상승률 1위(약 48%)인 코스피지수에 대한 기대감은 한껏 높아졌다. 이재명 대통령이 “(코스피 상승) 추세는 꺾이지 않을 것”이라 하니 동학개미들이 연휴 끝나기를 학수고대한다. 하지만 코스피 축포를 마냥 기뻐할 순 없다. 현 주가 흐름과 판이한 환율 움직임이 심상치 않아서다.
한국은행 황건일 금융통화위원은 지난달 말 “과거 달러인덱스(주요 6개국 통화 대비 달러 가치를 나타낸 지수)가 111 수준일 때 환율이 1400원을 넘은 것은 이해할 수 있었는데, 지금은 97 후반에서 움직이는데도 그렇다”며 “환율 수준에 대해 일부 금통위원들이 걱정하고 있다”고 했다. 통상 달러인덱스가 기준점인 100 이상 오르면(달러가치 상승) 원화가치가 내려가고(환율 상승), 달러인덱스가 내려가면 원화값이 오른다. 돈의 교환이 상대적 가치를 반영해서다. 그런데 이 경로가 정상 작동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연휴기간 달러인덱스는 97~98선에 머물렀지만 역외시장에서 원·달러 환율은 1420원을 뚫었다. 연휴 직전인 지난 2일 거래 종가(1400원)보다 20원 이상 뛰었다. 현 달러인덱스와 비슷한 2022년 2~3월의 원·달러 환율은 1220원 안팎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본다면 원화가치가 16% 이상 하락했다. 역대급이라는 현재의 약달러보다 더한 원화 약세장이다.
원화가 약세이면 외국자본이 유출돼 주가가 떨어지곤 한다. 하지만 코스피시장에서 외국인 투자자들은 지난 5월부터 지난달까지 약 16조원어치를 사들였다. 3500선을 돌파한 지난 2일엔 하루 순매수액으로 역대 1위인 3조1396억원어치를 쓸어 담았다. 경상수지는 28개월 연속 흑자다. 이처럼 달러가 들어와도 환율은 꾸준히 올라 1400원대를 벗어나지 않고 있다. 우리가 알던 상식과 반하는 일이 잇따라 벌어지고 있다.
달러가 국내에 머물지 않고 언제든 다시 빠져나갈 것이라는 불안감이 반영됐다고 봐야 한다. 여기엔 미국과의 관세협상이 주는 불확실성이 자리잡고 있다. 3500억 달러의 초대형 투자금에 대한 한·미 당국 간 합의 지연이 시장의 혼란을 키우고 있어서다. 실제 기업들이 수출로 벌어들인 달러를 풀지 않고 비축하면서 지난 8월 외화예금은 2년7개월 만에 최대였다. 최근 외국인의 대량 국채 매도(약 11조원)도 눈여겨볼 필요가 있다. 정부의 잇단 돈풀기와 부동산 가격 급등으로 금리인하(채권값 상승) 가능성을 낮게 보고 자금을 빼내고 있다. 주식과 채권 시장에서의 정반대 달러 이동은 그만큼 한국 경제의 신뢰도가 굳건하지 못하다는 얘기다. 원화 약세 속 증시 고공행진이 꺼림칙한 이유다.
환율은 국가 경제의 건강 상태를 보여주는 지표다. 단발성 관세 협상보다 중요한 건 한국 경제의 기초 체력이다. 고령화 등으로 잠재성장률은 0%대 추락이 코앞이다. 근로자 실질임금은 줄고 폐업한 자영업자가 100만명을 웃돈다. 소비쿠폰을 뿌려도 8월 소매판매는 1년6개월 만에 감소폭이 가장 컸다. 저성장의 덫에 걸려 국가 경쟁력이 꺼져간다. 이대로면 환율 우상향 곡선이 꺾일 가능성은 낮다. 중대 수술이 필요한 환자에게 모르핀만 투여(관세협상 타결)한다고 건강을 되찾긴 요원하다.
환율 1400원은 한국인에겐 심리적 마지노선이었다. 외환위기 당시 트라우마 때문이다. 5년 전 코로나19 사태 당시 1200원선을 오르내리던 환율은 심각한 대외 위기가 없음에도 어느새 1400원선으로 올라섰다. 마지노선이 뉴노멀(새 기준)이 됐다. 우리 경제의 내실이 갈수록 허약해지고 있다는 뜻이다.
경제의 기본기(환율 안정) 없이 유동성에만 의지한 주가 상승은 지속될 수 없고, 인플레를 고려하면 바람직스럽지도 않다. 외부(국제통화기금)에선 재정 안정, 구조개혁을 당부하는데 정부는 노란봉투법, 주 4.5일제에 골몰하고 있다. 어느 것이 국가 미래를 위한 최적의 수술 방식일까. 뻔한 답을 놓친다면 “국장 복귀가 지능순”이란 말은 헛된 구호에 그칠 것이다.
고세욱 논설위원 swkoh@kmib.co.kr